미뤄뒀던 ‘불편’, 피할 수 없는 미래다. 다시 ‘탈(脫)플라스틱’이다. 시민들은 가야 할 길을 쳐다봤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탈플라스틱 정책은 시행과 유예, 철회를 반복하며 혼선을 거듭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정부안을 발표했다. 2030년 폐플라스틱 배출량을 예상 배출량 대비 30% 줄이겠다는 것으로, 최종안은 내년 초 발표될 예정이다. 정부 계획 중 ‘장례식장 다회용기 사용 의무화’ 방안이 관심을 모은다. 우리 주변에서 일회용품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이 바로 장례식장이기 때문이다.
올 초 전주시는 ‘다회용기 재사용 촉진 지원사업’을 확대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일회용품 감량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해오던 다회용기 지원사업의 공간적 범위를 기존 장례식장에 이어 카페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환경정책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 속에 지자체가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이어서 큰 관심을 모았다. 전주시는 지난 2023년부터 지역 4개 장례식장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다회용기를 지원해 왔다.
그렇다면 전주시의 일회용품 감량정책은 올해 계획대로 추진됐을까? 그렇지 않다. 정반대였다. 사업영역 확대는커녕 사업예산조차 편성하지 못해 기존 장례식장 다회용기 지원사업마저 전면 중단됐다. 내년 예산도 없다. 심각한 재정난에 몰린 전주시가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이 사업을 챙기지 않은 것이다. 결국 전주시의 다회용기 지원사업은 발표와는 달리 추진동력을 상실한 채 한때의 반짝 사업으로 사라질 판이다. 전북지역에서 일회용품 감축, 탈플라스틱을 외치며 민·관이 함께 추진해 온 ‘1회용품 없는 날’, ‘1회용품 없는 청사 만들기’, ‘1회용품 없는 축제’ 등의 캠페인도 실상은 마찬가지다. 조례까지 만들면서 캠페인을 주도한 지자체가 스스로 추진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일상의 변화를 주도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실천하지 못한 보여주기식 캠페인이었던 것이다.
정부가 다시 일회용품 규제, 탈플라스틱 정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이번엔 지속될 수 있을까?, 실효성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크다. 플라스틱 저감 효과는 불확실하고 소상공인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다.
그래도 탈플라스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환경적 책임과 미래세대에 대한 의무 때문이다. 실효성, 지속가능성이 없는 정책은 소비자들의 불편은 물론, 기업·소상공인들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의 방향 제시에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 지자체가 인프라를 만들고, 부담을 줄여주고, 시민 참여를 이끌 때, 환경정책은 구호를 넘어 비로소 생활 속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