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북 지역 기업들 사이에서 공통된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창업 초기 단계에 머물던 기업들이 매출 구조를 만들고, 거래처를 넓히며, 일부는 수출까지 시도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지역 기반 기업이라는 설명보다 사업 성과로 먼저 이야기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북 로컬 기업의 성장은 더 이상 잠재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변화는 이제 실제 데이터로 읽히기 시작했다.
민간 투자와 LIPS 지원을 통해 로컬 기업도 확실히 성장할 수 있는 사례가 전북에서 나오고 있다.
꿀을 기반으로 한 F&B로부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해 가고 있는 ‘로컬웍스’는 일본 수출을 시작했다.
AI를 활용한 전통주 페어링부터 향미를 생성하는 AI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주미당’은 1년 전 크립톤 투자 유치 후 기업가치가 11배 상승했다. 올해 12월 4개 투자사로부터 55억 원 후속 투자를 받았으며, 2026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참가를 확정했다.
전북 농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헬시플레져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반석산업’은 7월 크립톤 투자 이후 7147:1의 경쟁률을 뚫고 강한 소상공인 대상을 수상했다.
△농산물 가공을 넘어 콘텐츠 브랜드로 성장한 ‘로컬웍스’
로컬웍스(워커비)는 전북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로컬웍스(대표 정은정)의 ‘워커비(WORKERBEE)’는 꿀을 기반으로 한 식품·바디케어·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현재 전북 익산에 공장을 두고 전주 원도심에 워커비 전주 브랜드 하우스를 운영하며, 국내 양봉농가 186곳과 협력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로컬 자원을 세계시장으로 연결, 단순 벌꿀 가공을 넘어 정체성과 감각을 갖춘 콘텐츠형 브랜드로 전환하고 있다.
로컬웍스는 국내뿐 아니라 실질적인 수출 성과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2025년부터는 일본의 내셔널 라이프스타일 채널(PLAZA, Natural Lawson, Loft 등)에 제품이 입점했다. 도쿄 팝업에서 주요 제품이 완판되는 등, 브랜드 스토리와 제품력이 실제 시장에서 입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F&B, 디자인페어 등을 통해 고객 반응을 검증했다. 현재까지 누적 50억 원 이상의 매출과 55종 이상의 제품 기획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로컬웍스는 로컬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지역 정체성이나 감성 소비의 영역에 두지 않았다. 지역에서 일하고 머무르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사업 구조로 설계했다는 점이 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농업 문제 해결에서 브랜드의 성장까지 이어진 ‘반석산업’
반석산업의 시작은 매우 소박했지만, 본질적인 문제에서 출발했다.
반석산업 송찬영 대표는 우연히 귀촌한 삼촌 집을 방문했다가 작목반이 여전히 손으로 땅콩을 까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고창은 국내 최대 땅콩 산지임에도 탈피 과정은 전통적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송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기계 연구 개발에 착수했고 국산 땅콩의 크기와 수분량에 최적화된 탈피기를 개발했다. 이 기계는 출시 이후 고창 농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노동 시간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탈피기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요가 발생했다.
케냐를 포함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한국의 땅콩 기계를 도입해 현지 농업 생산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렇게 반석산업은 수출 기반의 농기계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국산 땅콩의 생산량 증가는 또 다른 문제를 드러냈다.
원물로만 판매하는 기존 구조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고 안정적인 소비처 확보가 어려웠다. 송 대표는 직접 국산 곡물을 가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옳곡’이라는 브랜드를 설립했다.
매출 측면에서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기준 농기계 누적 매출은 약 20억 원, 옳곡 브랜드 누적 매출은 80억 원을 넘어섰다. 이를 통해 2025년에는 크립톤으로부터 초기 투자를 유치, 중소벤처기업부 강한 소상공인 통합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국산 원료를 활용한 건강한 식품과 농업기계 기술이라는 두 축을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했다는 점이 크게 평가받았다.
반석산업은 제조업이 어떻게 지역의 혁신 자산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LIPS를 통한 성장 과정에서 반석산업은 기술과 생산 중심의 기업에서 사업성과 성장성을 함께 갖춘 기업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런 사례는 제조업 역시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투자 관점에서 충분히 재평가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전북 지역 제조 기업 전반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민간 투자가 만든 연결 고리
이러한 기업 성장의 이면에는 민간 투자의 역할이 자리하고 있다.
전북에서 특히 주목받는 주체는 크립톤이다. 크립톤은 국내에서 가장 오랜 기간 액셀러레이터로 활동해 온 민간 투자사다. 기업 보육과 성장 지원, 펀드 운용 전반에서 축적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크립톤은 131억 원 규모의 라이콘 펀드를 조성하며 소상공인과 소규모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투자 기반을 확장했다. 동시에 전북 지사를 설립해 지역 기업을 단기 지원 대상이 아닌 장기 투자 파트너로 바라보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이는 전북 지역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실제 투자 판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기업의 성장이 먼저 나타나고, 민간 투자가 그 뒤를 잇는 구조를 하나로 연결하는 플랫폼이 LIPS다.
LIPS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소상공인 지원 사업으로, 창업성과 혁신성을 갖춘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전북에서의 LIPS는 단순한 정책 프로그램을 넘어, 성장한 기업과 민간 투자를 연결하는 구조적 접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전북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흐름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다. 지역 기업의 성장 사례가 축적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민간 투자사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전북 투자 생태계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크립톤과 같은 민간 운영사의 적극적인 참여는 전북을 단순한 정책 실험의 장이 아닌, 실제 투자 성과가 만들어지는 무대로 전환하고 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