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도 나이가 들면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한다. 내무부의 후신인 행정안전부에 있을 때 전북도 행정부지사 등을 지내며 틈틈이 내 고향과 중앙정부를 잇는 가교역할을 해왔다. 퇴임 후 전국 곳곳에 뻗어있는 새마을금고 살림을 챙기던 중 설 명절이 다가오니 전북의 산천이 부쩍 눈앞에 아른거린다.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전북의 미래에 한 방울의 경험을 첨가해 보고자 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 도시가 그렇듯, 전북도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라는 거센 파고에 직면해 있다. 인체에 혈행이 원활해야 하듯 지역 사회가 활기를 되찾으려면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자금이 돌아야 한다. 바꿔 말하면 우리 지역의 실핏줄을 돌게 하는 ‘자생적인 경제 생태계’의 복원이 시급하다. 우리 민족 고유의 상부상조 정신을 계승한 새마을금고와 지방자치의 파수꾼인 행정안전부가 함께 추진하는 사회적연대경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밥 열 술이 모이면 한 그릇이 된다는 십시일반의 지혜로 고난을 헤쳐왔다. 1998년부터 ‘사랑의 좀도리 운동’을 펼친 새마을금고는 태생부터가 거대 자본의 논리가 아닌, 서민과 이웃이 서로를 믿고 자본을 모은 ‘관계 금융’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시중 은행들이 수익이 나지 않는 지방 점포를 폐쇄하고 떠날 때, 묵묵히 지역민 곁을 지키며 버팀목이 되어준 곳이 바로 새마을금고다.
이제는 그 역할을 넘어 ‘사회적연대경제’라는 시대적 소명을 전북의 토양 위에 꽃피우면 어떨까. 사회적연대경제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지역에서 창출된 부(富)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다시 지역 내의 소상공인, 청년 창업가,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구성원의 자발적인 협동과 민주적인 참여로 자본보다 사람, 나아가 사회적 목적을 우선으로 하는 경제활동이다. 1970년대 유럽에서 대규모 실업, 고령화 등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사회적연대경제가 부상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프랑스에는 약 20만 개의 사회적연대기업이 활동하고, 238만 명이 이들 기업에 종사한다. 민간 일자리의 14%,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전북은 농생명 산업과 전통문화라는 훌륭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새마을금고가 가진 3,198개(점포 수)의 지역 밀착형 네트워크가 전북의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 기업과 결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제도권 금융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지역 청년들에게 기회의 사다리를 놓아주고,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농가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전북의 현실에서, 새마을금고의 지역 커뮤니티 센터 지원 사업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지역 사회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인프라다. 금융이 차가운 수 놀음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품을 때 비로소 지역은 살아 숨 쉬게 된다.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하다는 근고지영(根固枝榮)의 이치는 경제라고 다르지 않다. 전북의 풀뿌리 경제를 지탱해 온 새마을금고가 주축이 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지역 구성원들이 그 혜택을 나누며 다시 지역에 투자하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전북의 저력과 새마을금고의 ‘따뜻한 금융’이 만날 때, 우리 고향은 다시 한번 힘차게 도약할 것이다. 사람 중심의 사회적 금융이 전북 곳곳에 스며들어 메마른 지역 경제를 적시고 희망의 싹을 틔우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최훈 새마을금고중앙회 지도이사는 전북도 행정부지사·행정안전부 차관보를 역임했다.
최훈 새마을금고중앙회 지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