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모처럼 정읍 출신 배우 박근형 교수님과 골프 라운딩을 함께했다. 그의 호방하고 재치 있는 유머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든다섯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그의 호쾌한 스윙과 비거리는 동반자 중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는 고향에서의 라운딩이 가장 편안하고 의미 있다고 말한다. 여전히 영화와 연극계의 산증인으로 빛나는 이유 역시 올곧은 삶의 자세와 그런 인생관 덕분일 것이다.
지난번 나는 ‘고창 문화의 전당’에서 상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했다. 깊은 철학적 사유가 요구되는 난해한 작품이지만, 객석은 만원이었다. 거장의 연기를 직접 보고자, 관객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을 보고 나오며, 시골인 고창에서도 이런 연극을 만날 수 있는데 정읍에서는 왜 그동안 이런 문화적 기회가 드물까 하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이후 ‘전주 삼성문화회관’에서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관람했다. 극장은 수천 명의 관객으로 가득 찼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숨소리조차 죽이며 몰입하던 성숙한 관람 태도가 감동을 주었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무대에서 그는 쉼 없이 대사를 쏟아내며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열정적인 연기에 메료되었다. 무대 위에서 나이를 가늠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최근 박근형교수가 주연한 영화 <사람과 고기>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영관을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독립영화는 인근 전주나 광주에는 상영관이 없어 온라인으로 구매해 TV 화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각종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묵직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영화 〈사람과 고기〉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세 노인, 형준(박근형), 우식(장용), 화진(예수정)을 담담히 비춘다. 흔히 노년을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라 말하지만, 영화 속 그들에겐 그럴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사회가 잊고 방치한 이 ‘외로운 섬’ 같은 존재들은 함께 밥을 먹고 온기를 나누며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 생존의 몸부림은 때로 서글픈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양심을 뒤로한 채 공짜 고기를 먹으러 다니며, 위태로운 동행을 이어간다. 영화 속 그들이 저지르는 행위는 분명 사회적 규범을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범죄 앞에서 관객은 쉽게 단죄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다. 영화는 끝내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저들의 고독하고 남루한 삶에 대해 과연 우리는 책임이 없는가?“
형준과 화진만이 지키는 외로운 우식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한 제자는 그는 시를 가르치던 교사였으며 시구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목청껏 웃고 싶어서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살기도 구찮고 죽기도 구찮다.”
그 시는 헤밍웨이의 <노인과바다> 속 한 문장을 떠오르게 하였다.
“인간은 파멸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노년은 단순히 스러져가는 과정이 아니라,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버티는’ 숭고한 투쟁의 현장이다. 우리 곁의 소외된 노년들을 다시한번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되세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