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정신을 지켜온 429년 역사의 기령당이 행정의 무관심과 예산 빈곤 속에 고사 위기에 처했다. 과거 전라감영 관찰사가 부임 직후 가장 먼저 찾을 만큼 영광스러운 역사를 자랑했으나, 현재는 일반 경로당과 다를 바 없는 처우에 그치며 전주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령당은 1597년 창건돼 현존하는 경로시설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이다. 단순한 쉼터를 넘어 지역 원로들이 학문과 풍류를 즐기며 지방자치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임에도 턱없이 부족한 예산 탓에 노후화된 건물 보수는커녕 최소한의 운영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1일 전주시에 따르면 현재 기령당은 ‘노인복지’시설로 분류돼 있다. 이에 따라 지원되는 예산은 연간 약 570만 원의 운영비가 전부다. 400년 넘는 목조건축물의 특성상 지속적인 관리가 필수적이지만 건물 유지‧보수나 전통 계승을 위한 별도의 예산은 없는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현재로선 문화재 관련 예산이 따로 책정된 게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부족한 예산 탓에 전주의 무형자산인 ‘기로연(耆老宴)’ 행사마저 중단됐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기로소의 전통을 계승해 오랫동안 사회 원로를 예우해 온 전주의 대표적인 행사지만, 불과 1000만원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2017년 이후 8년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인력 처우는 더욱 열악하다. 24시간 상주하며 시설을 지키는 관리인의 수당은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월 30만원이 전부다. 사실상 개인의 희생에만 기대고 있어 화재나 도난 등 안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는 충분하다. ‘전주시 향토문화유산 보호 조례(제23조)’를 보면 필요시 예산의 범위에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원 근거가 명확함에도 전주시가 예산부족을 이유로 이를 외면하는 것은 명백한 소극행정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따라 역사적 위상에 걸맞은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상칠 기령당장은 “전라감사가 부임하면 가장 먼저 찾던 곳이 바로 이곳 기령당인데, (전주시가) 역사적 가치를 몰라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는 35명의 당원이 내는 연회비와 찬조금으로 기령당을 운영하고 있다”며 “환경 정비가 시급한데 예산 확보가 어려워 현상만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