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광주의 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본격 논의가 시작된지 불과 한달여 만에 통합시의 명칭을 정하고 큰 테두리에서 합의를 마쳤다. 아찔할 정도로 빠른 속도다. 정부에서는 광역통합시에 4년간 20조원을 지원한다고 나섰다. 내친김에 통합의 선물로 농림축산식품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전남·광주의 통합을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매우 조심스러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는 않다. 반대론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호남의 정체성’이다. 전남·광주가 통합되면서 자칫 ‘호남’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호남정체성 문제는 의외로 심각한 논쟁점이 될 수 있는데 정치권은 침묵하고 언론은 우회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 때마다 그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호남의 정신’은 지금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전북사람들은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호남은 전남북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남도사람들은 이미 ‘호남=광주’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이들에게 호남의 정체성은 광주정신 즉 민주화운동의 성지라는 도시의 역사성과 상징을 뜻한다. 광주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광주라는 도시의 이름이 사라지는 순간 호남의 정체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호남’의 울타리에 전북은 이미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호남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호남은 어떤 의미였고 지금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한때 전북에서는 ‘호남’이 아니라 ‘전라도’라는 표현을 쓰자는 흐름도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뭐라고 부르느냐가 아니다. ‘전라도의 수부’라는 흘러간 영광은 지금 이 시점에 아무런 실질적, 상징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한국 현대사에 엄청난 힘을 발휘해왔던 호남 혹은 호남정치의 흐름은 전북에게는 사실 비정의 역사였다. 해방 직후 전남북의 농업에 기반한 경제력과 이곳 출신의 정치가들이 기반을 다진 한민당은 호남정치의 실질이었지만 아다시피 그 위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히려 박정희 시대의 호남정치는 차별과 소외를 상징했는데 그 중심은 전남·광주였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은 역설적으로 호남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었는데, 여기서도 전북은 호남인 듯 호남 아닌 듯한 존재였다.
전남·광주뿐만 아니라 다른 광역단체들도 대통합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추동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5극체제를 통해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지만 그 결말은 단연코 5개의 메가시티를 향하고 있다. 5극3특은 윤석열정부에서는 슬로건이었지만 지금은 지역의 미래를 가리키는 기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는 3특이다. 그중에서도 제주와 강원처럼 특색이 명확하지 않은 전북은 어디로 갈 것인가. 5극에 끼워달라 할 수 없으니 지원이라도 해달라는 논리는 빈약하고 허망하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위기 속에 기회를 담고 있다. 이미 정치언어로 변해버린 호남 혹은 전라도의 옛 영광을 붙잡고 있을 때가 아니다. 3특의 전략은 5극과 완전히 달라야 한다. 북으로는 세종과 대전을 향하고, 서쪽으로는 중국에 어필할 수 있는 조건을 구축하며, 동으로는 대구경북과 연계하여 중부권의 캐스팅보드가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행정구역과 정치구조를 과감하게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북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특별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 정책화하고 그 정책을 달성할 수단과 재원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지금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