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걸 전부 그리지 마라
화면을 꽉 채우지 마라
비워두란다
덜 그리는 게 꽉 채우는 거라니
할 말 다 쏟아놓고 나면 허전하듯
적당한 침묵이 더 많은 웅변이 되듯
눈앞에 겹겹이 펼쳐진 풍경 앞에
보고도 안 보이는 게
너무 힘들다
그 힘마저 빼란다
그래야 한 폭의 단단한 현실이 된단다.
여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빈자리가 아니라 남은 자리라는 뜻이어서 그렇다. 비어서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라, 아직 남아 있다는 희망으로 온전히 완성해 내는 게 여백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보고도 안 보이는” 역설에서 우리의 살림이 엿보이고, 그것이 “단단한 현실” 같아서 자꾸만 안 보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그 마음을 “침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침묵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여백이 아닐까? 그래서 누군가의 여백이고자 하는 말 없는 존재들을 사랑하게 된다. 비어 있는 의자처럼, 언제든 채워질 수 있는 여백. 그곳에 당신이 도착한다면 참 좋겠다. /문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