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첫마중길과 ‘도시 침술’

기차 탈 일이 별로 없지만, 최근 2년 사이 전주역 방향으로 한 달에 한두 번씩 오갈 일이 생겼다. 시간에 쫓기는 길이 아니라 도로 한 가운데 심어진 나무와 산책길에 눈길을 보내곤 한다. 도로 양 옆에 새로 들어선 호텔과 고층 아파트, 맛집 간판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시속 40㎞ 도로여서 다소 천천히 움직여도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는 일도 없다. 10년 전 ‘첫마중길’로 이름 지어진 이 길이 곧게 뻗어진 왕복 8차선의 시속 60㎞ 도로였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일이다.

2015년 시작된 전주역 앞 첫마중길 조성사업은 사업 초기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8차선 도로를 6차선으로 줄이고 중앙 차선 2개를 보행도로와 명품 숲길로 만들겠다는, 당시로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무모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쾌적한 전주의 첫 이미지를 조성하고 침체된 역세권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취지였지만 주변 상인들은 교통 체증으로 인한 상권 몰락을 우려했다. 전주역을 오가는 버스와 택시, 전주역을 자주 이용하는 승객들의 비판도 거셌다.

지난 2017년 5월 17일 전주역 앞 첫마중길. 공식 개통을 일주일 앞두고 출입기자들과 함께 현장설명회에 나선 당시 김승수 전주시장은 “첫마중길은 전주의 첫인상을 바꾸는 길이 되고, 첫마중길이 도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차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로, 그 시작의 문을 첫마중길이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첫마중길이 전주역 주변과 인근 6지구의 침체된 상권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다.

10년이 지난 뒤 외지 관광객들의 첫마중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하는 느티나무 숲길이 “전주라는 도시가 나를 환영해 주는 느낌을 준다”며 ‘감성적 환대’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한다. 첫마중길 중앙 광장에 설치된 야간 조명과 곡선 도로는 SNS 인증샷 명소가 됐다. 빨간 컨테이너 안에 2021년 4월 문을 연 ‘첫마중길 여행자 도서관’은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대기실”이라는 평을 받는다. 첫마중길 주변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식당과 카페도 늘고 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침체된 상권 회복의 결실이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첫마중길의 콘텐츠 부족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공간의 아름다움에 비해 “보고 나면 할 게 없다. 길은 예쁜데 10~20분 정도 걷고 나면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즐길거리 부족 지적도 나온다.

익숙한 풍경을 바꾸려는 시도는 언제나 저항에 부딪히고, 변화는 완성된 후에야 비로소 이해된다. 세계 생태 수도로 유명한 브라질 쿠리치바를 ‘꿈의 생태도시’로 만든 자이미 레르네르(Jaime Lerner)는 ‘도시 침술(Urban Acupuncture)’을 주창했다. 작은 자극이 만드는 큰 변화를 의미하는 ‘도시 침술’은 한의사가 작은 침 하나로 질병을 치료하듯, 개발이 필요한 도시에 최소한의 인위적 개입을 통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브라질의 건축가·도시계획전문가로 쿠리치바 시장을 세 차례 맡고 파라나주 주지사를 역임한 레르네르의 도시 침술 이론은 콜롬비아 메데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빌바오, 일본 삿포로 등 세계 많은 도시의 변화를 이끌었다. 서울 청계천 복원도 도시 침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예술인 동시에, 미래의 가치를 현재로 가져오는 행위다. 쇠퇴해가는 골목, 방치된 유휴 부지, 끊어진 보행로 등 도시의 기혈이 막힌 곳에 ‘정책의 침’이 필요하다. 도시 침술사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이 많아질수록, 우리 도시들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강인석 디지털미디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