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신문고] 건축 발주 문화 이대로 좋은가?

최저가 중심 시스템 문제 사회 인식 구조 개선돼야

거주 목적의 개인 주택을 짓는 경우를 제외하고 영리 목적의 민간사업인 경우 건축을 상품이나 경제적 수단으로만 보는 일이 빈번하다.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발주 사업의 경우에도 건축물의 공공성 및 가치를 우선하기보다 빠른 행정 처리를 위해 급하게 발주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원인을 생각해보면 다음 몇 가지로 간추려볼 수 있다.

첫째, 최저가 가격 중심의 발주 시스템 문제!

공공 또는 민간 발주 모두 더 적은 예산으로 건물을 짓고자 설계용역 발주 단계부터 실질적인 변별력 없이 낮은 설계비를 책정하고 설계자의 아이디어 및 진행 과정에 대한 대가를 비용 절감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는 공간의 질을 향상시키고 공공성 및 도시 맥락을 생각하기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적은 비용으로 더 큰 면적을 만들어내는지가 능력이 되는 수익성 위주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둘째, 발주자 역량에 대한 제도적 요구가 없다. 

조사, 분석, 기획 등을 거쳐 이루어져야 할 사업이 건축에 대한 발주자의 전문적 지식 부재, 즉흥적인 판단, 주관적인 감정 등으로 인해 설계 전문가인 건축사를 발주자의 요구사항을 처리해주는 단순 업무자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건축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존중하고 발주자와 설계자의 상호 협력이 이루어져야 더 좋은 건축물과 사업 성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셋째, 설계 변경 및 업무 범위 확대에 따른 책임의 부재!

발주자의 변심 또는 사업 범위의 확대 등에 따른 설계 변경 진행시 추가 대가 지급 없이 설계 도서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다. 건축사의 전문적인 가치 노동을 인정하지 않고 당연한 서비스로 인식하기 때문에 설계자의 업무는 누적되고 이는 설계 품질의 저하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넷째, 건축사의 애매한 지위 문제!

법적으로 건축사는 설계, 감리의 책임자로 규정되어 있지만 발주자에게 설계안을 강제할 권한이 없어 책임은 건축사에게 요구되고 전문성은 계약으로 무력화되어 발주자와 건축사가 상호 협력의 동등한 입장이 아닌 지시하는 상급자와 지시를 이행하는 하급자처럼 행동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하자가 발생하면 발주자의 잘못된 요구나 개입은 법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설계 건축사가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끝으로 공공건축 사업의 교육 기능 상실의 문제다. 

공공으로 진행되는 건축사업조차 저가 발주 위주의 전형적인 형태가 반복되다 보니 일반 시민과 민간 사업자 등이 올바른 건축 발주 사례를 접할 기회가 적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존중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건축 발주 문화는 한순간에 바뀔 수 없다.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아도 사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회 제도, 권한 없이 책임만 강요하는 법과 규정,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사회 인식 구조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랫동안 좋은 건축물을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동철 건축사(전북특별자치도건축사회/종합건축사사무소 세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