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형진 작가의 시 세계를 모은 유고 시집이 출간됐다.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그의 삶과 문학 정신을 기리는 시집<언제나 어제는 내일>(북매니저)에는 생전 남긴 시 약 50편이 담겼다.
김 작가는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언어와 글을 통해 인간과 삶을 이해하도록 제자들을 이끈 인물로 기억된다. 교직을 떠난 뒤에도 수필 동인인 순수필동인 회원들을 지도하며 문학적 사유의 깊이를 강조했다. 그가 자주 강조했던 말은 “인간을 향한 집요한 사유와 문학성, 철학성, 예술성이 어우러질 때 작품의 깊이가 완성된다”였다.
동인들은 그의 가르침 아래 문학이 왜 아름다워야 하는지, 왜 진실을 향해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회고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도 본질을 묻는 태도가 담겨 있으며,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입니다./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걸었는데 제자립니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입니다./ 재작년에도 달리고, 올해도 달렸는데 제자립니다./ 구덩이에 빠져 헛바퀴만 돌리는/ 흙탕물 흩뿌리며 헛바퀴만 돌리는/ 자동차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 앞을 막는 헛것들 제치고/ 나아가야 하는데 말입니다”(시 ‘공회전(空回轉)’ 전문)
“자고 일어나보니 꽃이 졌다./ 어제까지 향기 뿜던 자태 간곳없다./ 하양, ᄈᆞᆯ강, 노랑/ 바닥에서 시들어 간다./ 내려다보는 태양/ 숨을 고른다./ 꽃이 진 자리/ 이슬로 맺힌 방울방울/ 진주 되어 쏟아진다./ 천년을 불어온 바람이 봄을 앗아가도/ 천년을 피어 온 꽃은 피고 또 피는데/ 이슬 한 방울 맺지 못한/ 나의 봄날은 간다.”(시‘봄날은 간다’ 전문)
이처럼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삶의 무게와 사유가 응축된 언어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시 ‘공회전’과 ‘봄날은 간다’ 등에는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 사이에서 성찰하는 인간의 고독과 희망, 삶의 아름다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겼다.
신영규 순수필동인 회장은 발간사를 통해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도 벌써 1년이 돼 간다”며 “함께 글을 읽고 문학을 이야기하던 시간이 멈춘 듯한 허전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정신과 문학은 여전히 살아 있다”며 “시집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선생님과 다시 만나게 된다. 이번 시집이 오늘의 독자와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 사라지지 않는 숨결로 오래 살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