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현장서 피어난 애틋한 시편, 박철영 ‘노동은 푸른 산소다’

‘노동은 푸른 산소다’ 표지/사진=교보문고

“노동자가 일하러 나가는 것은/ 햇볕이 필요해서다/ 사무실 따위에 갇혀/ 창백한 얼굴로 평생을 살지 않겠다고/ 책상머리를 박차고 용접기를 손에 잡은 거다/ 햇볕이 부족한 지구에서 살아가려면/ 인공으로라도 불꽃의 온도를 올려/ 스스로 광합성을 이루는 거다/ 그래야 폐 속의 더러운 공기를 정화할 수 있다/ (중략)/ 영혼을 맑게 하는 것은 노동의 푸른 몸짓이다/ 사라진 희망을 만드는 열정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강한 의지여서/ 용접봉에서 빠져나온 불꽃으로/ 노동은 언제나 푸른 산소의 시간이었다.”(시 ‘노동은 푸른 산소다’)

남원 출신의 박철영 시인이 노동 문학의 현장과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노동시집 <노동은 푸른 산소다>(실천문학)을 펴냈다.

시인은 30여 년 넘게 포스코 제철소 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정년을 마쳤지만, 아직도 여수 율촌공단 현장에서 뭇 노동자들과 함께 근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노동자다. 이번 시집의 시들은 대부분 일상 속 노동자의 삶 그 자체를 형상화한다. 실제 작품은 노동자로 살면서 노동자를 외면하지 않는, 시인의 신산한 눈으로 포착한 장면이 담겨 시들 곳곳이 노동 현장으로 점철돼 있다.

“아무것을 알려주지 않은 날들과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모른 채 4월은 오고  어딘가로 흘러가고 힘들다며 외면하려 한 꽃들이 흙을 비집고 나와 하늘을 쳐다본다/ 4월은 기쁨이나 슬픔만으로 말할 수 없어 서로를 들여다보다가 잊었던 말 떠올랐다는 듯 사랑한다는 말 생각났다는 듯/ 현장 떠난 뒤로 소식 한번 오지 않는 작업장 막둥이가 몸 다쳤던 날이 하필이면 꼭 이맘때였다.”(시 ‘4월’)

“물려받은 가난은 진창처럼 엉겨/ 떨어져 나갈 날이 없었다/ 세상의 구석을 떠돌다가/ 철근쟁이가 되어서는/ 반듯한 허리 꺾어가며/ 스스로 벽이 되거나 모서리가 되어 살아온/ 마흔 살을 지나/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서는 단칸 방/ 공친 날에는/ 욱신거리는 제목들을 내용 삼은/ 시 한 편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발목 언저리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심해져/ 첫 구절부터 종종은/ 하루가 위태롭게 휘청거렸다.”(시 ‘철근챙이의 詩’)

노동 현장을 드러내면서도 몇몇 시들에서 보이는 서정의 시학 또한 사치스럽지 않다. 작가의 문장들을 통해 노동 현장의 가학성이나 불균등, 차별 같은 것들보단 인간 근원의 심성에서 바라보는 노동에 대한 얼굴을 다채롭게 조망한다.

박철영 시인/사진=교보문고

박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다들 살기 힘들다고 하는 세상에 정말로 힘든 사람들은 온몸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라며 “그들은 시곗바늘처럼 하루를 마치고 다음 날을 위해 잠들지만 힘들다고 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하고 상징적으로 발현한 문장이라 하지만 노동 현장의 하루는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 가슴아픔 뿐이다. 시를 세상에 내놓으며 그들의 모습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시인은 한국방송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로 다시 일어서고 싶다>와 <월선리의 달>, <꽃을 전정하다> 등이 있다. 현재 그는 <미래시학> 편집위원과 <현대시문학> 부주간으로 활동 중이다.

전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