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유장(悠長)한 새만금의 역사를 알자

김기만 정론실천연대 대표·전 청와대 춘추관장

서울에 있는 전북 출신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새만금의 기본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놀라는 경우가 적잖다. 여의도 140배의 규모, 세계 최장 33.9km 방조제, 공사 기간 19년(1991~2010년)이라는 기본 수치조차 낯선 이들이 많다. 

새만금은 단군 이래 최대의 단일 국책사업으로, 1988년 정부 확정 이후 38년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환경단체의 소송으로 공사가 두차례 중단되기도 했지만, 전북의 미래를 건 사업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새만금 구상은 박정희 정부 시절이던 1970년대 초에 시작돼, 1980년대 초 냉해로 인한 쌀 부족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재검토됐다. 1987년 ‘새만금 간척 종합개발사업’이 발표되면서 국가사업으로 격상됐지만, 1988년 2월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당초 공약을 미루며 추진이 지체됐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형성되고, 평화민주당 원내총무였던 김원기 의원이 등장하면서 새만금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당시 김 의원은 김대중 총재에게 “이번 영수회담에서 반드시 새만금사업을 확약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는 “균형 명목으로 전남에 사업을 나눠주면 안 된다”며 전북 민심의 절박함을 강조했다. 

실제로 당시 호남 정책의 대부분은 전남으로 향하고 있었고, “김대중 총재 아래 전북이 얻은 게 무엇이냐”는 불만이 팽배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김원기 총무는 전북의 살 길을 모색하다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새만금’을 다시 꺼내들었다. 

결국 1988년 7월 16일 열린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총재의 영수회담에서 새만금이 논의되었고, 이로써 ‘죽어 있던 사업’은 되살아났다. 김 전 의장은 이를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성취로 여겼다. 그는 “새만금을 옥동자로 낳지는 못했지만 유복자는 낳은 셈”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 후에도 새만금은 긴 세월 난관을 거쳤다. 그러나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언급, 현대자동차의 9조원 투자, 김민석 총리의 현장 방문으로 새만금이 다시 국가적 비전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구순을 맞은 김원기 전 의장은 그런 소식을 들으며 “감격스럽다”고 했다. 전북인들은 새만금을 통해 지역의 미래를 꿈꾸게 되었고, 그 시작점엔 김원기라는 인물이 있었다. 

새만금의 현대사적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와 전라북도가 김 전 의장을 찾아 당시 영수회담의 막후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나아가 새만금은 이제 간척지를 넘어 AI,에너지, 수소산업의 거점으로 발전해야 한다. 

윤석진 전 KIST 원장은 9일 “새만금이 한국형 AI, 그린에너지 통합산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재생에너지 생산–그린수소–AI 수소도시–로봇·SDV 산업이 연결되는 순환형 모델을 제시했다. 

38년 전,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새만금의 길을 뚫었던 한 정치인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의 변화도 없었을 것이다. 새만금 성공을 다짐하는 이 시점에서, 김원기 전 국회의장에게 늦게나마 감사의 박수라도 보내면 어떨까.

김기만 정론실천연대 대표·전 청와대 춘추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