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는 자주적인 삶을 산 선구자입니다. 그런 분의 역사적 배경을 알리고, 또 확산시켜야죠. 정읍에는 그런 문화유산이 많은데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14일 정읍 칠보면 여산송씨 묘역 현장에서 만난 정읍시 정순왕후 선양회 송기혁 대표의 말이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이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를 향한 대중적 서사를 넘어, 그녀의 역사적 뿌리인 정읍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재조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송 대표는 정순왕후 가문의 위상을 증명하는 ‘송연손(宋淵孫) 신도비’ 앞에서 이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지역의 역사적 정통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주장하는 재조명의 핵심은 정순왕후가 단순한 기록 속 인물이 아닌, 정읍 태인현(현 칠보)에 기반을 둔 명문가 출신임을 입증하는 가계 기록과 유물에 있다. 선양회가 고증한 기록에 따르면 정순왕후는 정읍 묘역에 안치된 송연손과 5촌 당숙·조카 관계인 직계가족이다.
특히 1551년(명종 6년) 건립된 신도비문에는 중종이 “내가 어리석지 않게 된 것은 스승의 가르침 덕분”이라며 송연손을 극찬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정순왕후 가문이 왕실의 스승을 배출하고 중앙정계와 활발히 교류했던 명문가였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지표다.
가문의 위상은 현장에 서 있는 비석의 규모로도 증명된다. 비석의 몸체와 머릿돌을 하나의 거대한 돌로 깎아 만든 일체형 구조는 당시 가문의 경제력과 석조 기술을 그대로 보여준다.
비석 뒷면에 새겨진 ‘방아찧는 옥토끼’ 문양은 호남지역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희귀 사례로 꼽힌다는 게 송 대표의 설명이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 신광한과 박공량이 각각 비문과 전액을 썼다는 점 또한 유물의 학술적 가치를 더한다.
송 대표는 정읍의 유산이 온전히 보존된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정순왕후의 부친 송현수 선생의 묘소가 처한 상반된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그는 “서울 우면동의 송현수 묘역은 문화재 지정 없이 방치돼 석물이 훼손됐고, 최근에는 주택개발지구에 포함되어 사라질 위기”라며 “이러한 실태를 바로잡고 유산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이 정순왕후의 역사적 뿌리를 찾는 길”이라고 전했다.
현재 송연손 신도비는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심의 절차를 밟고 있으며, 결과는 이르면 4월경 발표될 예정이다. 선양회는 이번 지정을 발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무성서원과 송연손 묘역을 잇는 역사문화 코스를 조성할 계획이다.
영화를 통해 시작된 관심이 정읍의 역사문화 자산을 보존하고 지역 브랜드로 확립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