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을 여는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흰 공기와 밥과 피어오르는 김을 치환하면 원초적 세계와 삶, 그 삶을 영위해 가야 할 순결한 영혼이 비친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것들은 점염되거나 스스로 파멸하는데 그것의 정체는 본질적 인간 정신의 상실이다.

‘지나가버린다’는 것의 의미를 ‘사라진다’로 해석하면 피어올라 사라지는 김이 곧 그것이며,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던 나는 어느 날 문득 한 그릇의 따뜻한 밥 앞에서 그것과 마주한다. 오래전부터 그래왔고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자각하면서도 그저 밥을 먹는 행위는 상실감에 무기력해진 나, 또는 우리들의 군상일 것인데, 우리네 삶이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무엇이 상실된 세계에 던져진 것은 아닐지. / 김유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