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가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적 이중잣대’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 예술계에는 자생력 부족 등을 이유로 지원금 삭감의 칼을 휘두르면서도, 정작 도 스스로 청산대상으로 규정한 인물들의 선양사업에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정책적으로 자기부정에 빠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전북도는 지난 2020년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을 통해 도내 친일 잔재 133건을 직접 규명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하는 등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들을 명백한 청산대상으로 분류하며 행정적 대응의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현재 도에서 추진하는 사업 중에는 도 스스로 내놓은 조사 결과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실정이다.
실제 올해 전북문화관광재단 지원사업에서 도내 시·군 문인단체 대다수는 자생력 부족 등을 이유로 탈락했다. 반면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인물을 기리는 특정 단체는 선정돼 공적자금을 지원받게 됐다. 재단 측은 “기획안 내용이 우수하고 제자들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행정이 규정한 청산 대상사업에 스스로 공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모순은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가치 판단의 문제를 넘어 행정원칙의 일관성이 무너진 부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적 공간의 역사적 감수성 결여도 심각하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최근까지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의 작품을 비판적 주석 없이 예술성만 강조해 전시해왔다. 교육적 가치를 우선해야 할 국립기관이 과오는 은폐한 채 심미적 가치만 부각하는 것은 관람객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해당 콘텐츠는 지역 예술계의 거센 항의 끝에 지난 2024년 삭제됐다.
지자체의 행태는 더욱 직접적이다. 군산시에서 운영하는 채만식문학관은 2명의 공무원이 상주하며 1년에 1억3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이다. 군산의 ‘백릉길(채만식)’이나 고창의 ‘인촌로(김성수)’ 등 친일인사의 호를 도로명주소로 고수하는 현실은 행정의 역사적 감수성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점이다.
최기우 작가는 30일 전북일보와의 통화에서 “언어를 짜깁기해 만든 미사여구에 무슨 사상이 담겨 있겠느냐"며 “삶과 철학이 무너진 작가의 작품을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보존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친일 문인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그늘에 가려진 다른 소중한 문인들을 지우고 묻어버리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북도 관계자는 “순수하게 예술적 측면으로 봤을 때는 그들의 성과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며 “과거에 대한 행적은 비판해야겠지만, 행정에서 예술 창작에 대한 기회까지 박탈하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친일과 관련해서는) 논의와 공감대 형성을 통해 차근차근 접근해야 할 측면이 있다. 앞으로 관련 사안은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