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선거판의 ‘꾼’들

선거의 계절이다. 그런데 정작 유권자는 보이지 않는다. 투표일이 다가오는데, 선택은 이미 다른 곳에서 끝나버렸다. ‘꾼의 시대’다. 세상은 선량한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꾼에 의해 움직인다. 원래 ‘꾼’은 어떤 일을 자주 하거나 매우 능숙하게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부정적 뉘앙스가 짙어지고 있다. 능숙함보다는 교묘함, 상식과 정의보다는 전략과 술수가 먼저 떠오른다. 특정 분야에서 이 꾼들은 우리 사회 최상의 가치여야 할 ‘정의(正義)’마저 도구처럼 다룬다.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는 보편적 기준이 아니다. ‘우리 편만의 정의’, 즉 ‘선택적 정의’다. 그래서 우리가 의심 없이 믿고 외쳐온 구호들마저 어쩌면 꾼들의 책상 위에서 치밀하게 짜인 ‘기획된 정의’였을지도 모른다.

선거판도 꾼들의 손에 넘어간 지 오래다. 패거리정치·계파정치가 고착된 우리 정치판에서 ‘꾼들의 선거’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공천권을 무기로 세력을 키우려는 계파 수장과 판을 짜고 굴리는 꾼들, 또 그 판에 올라타 연명하려는 후보자들, 그리고 특정 후보에 빌붙어 ‘승리의 배당금’을 얻어내려는 지역 패거리들까지⋯. 이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선거판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이렇게 판을 기획한 꾼들은 후보의 철학이나 정책에 집중하지 않는다. 주민의 목소리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상식과 정의·진실과 같은 보편적 가치조차 쳐다보지 않는다. 오직 ‘어느 편인가’만이 중요하다. 그 결과는 선거 이후 선명하게 드러난다. 공조직 인사는 능력이 아니라 ‘누구 사람인가’에 따라 결정되고, 승자의 편에 선 패거리들에게는 ‘배당금’처럼 자리가 배분된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런 꾼들의 그림자가 곳곳서 포착된다. 임실과 무주·부안 등 전북지역 8개 시·군에서 민주당 기초단체장 예비후보들이 제기한 ‘경선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안은 고발과 경찰 수사로 이어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도 선거판의 주인은 유권자다. 한국 민주주의의 굴곡마다 변화와 진전을 만들어낸 주체는 언제나 시민, 곧 유권자였다. 그들도 이미 선거판에서 노련한 꾼이 돼 있다. ‘구경꾼’ 말이다. 판은 이미 짜여 있고, 유권자는 박수로 그 결과를 확인해주는 구경꾼 역할에 익숙해져 있다. 치밀하게 설계된 그들의 ‘판’에서 다수의 유권자는 주인이 아니다. 그저 결과를 확인하고 승인하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다. 후보를 고르는 과정에서 배제된 채, 이미 짜여진 선택지 앞에서 ‘최선’이 아닌 ‘차선’을 강요받는다.

‘선거 시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그들이 짜놓은 판을 졸졸 따라다니며 박수 치는 구경꾼으로 남을 텐가, 아니면 선거의 주인임을 자각해 소중한 권리를 되찾을 텐가. 정당의 경선과 공천은 결코 선거의 종착점이 아니다. 진정한 유권자의 시간은 이제부터다.

/ 김종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