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과 삶의 진실을 길어 올리다…김현조 시선집 ‘우스운 일’

단아한 시 정신과 담백하고 진솔한 언어로 엮어낸 126편의 시 수록 유성호 평론가 “내면의 출렁임과 경험적 서사 결속…근원적 기억 향해”

김현조 시인. /전북일보 자료사진

서정시의 맥을 이으며 시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김현조 시인이 시선집 <우스운 일>(신아출판사)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지나온 삶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삶의 비의(悲意)와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다.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존재와 시 쓰기의 행위를 경유하며 자신의 시력과 인생론을 펼쳐 보인다. 특히 우리 사회의 장면을 더듬어 그 속에 스며있는 오래된 기억과 삶의 진실을 담담히 길어올리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단아한 시 정신과 담백하고 진솔한 언어가 어우러진 시선집은 정숙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준다.

“비가 온다. 고려인 협동농장에 살고 있는 김 노인은 비를 보고 있다. 낙숫물이 눈물 같다. 이웃나라 알마티로 나가 있는 자식들은 걱정 말라지만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 나라가 왜 이 모양인지 자꾸 내 잘못인 것 같다 자식들 얼굴 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중략…) 도시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꼭 먼지를 동반한 사막의 바람소리 같다. 지금 내리는 빗물은 김 노인의 걱정을 더 키운다. 만리타국에 나와 있는 나를 걱정하고 있을 어머니가 보고 싶다.”(‘낙숫물소리’ 부분)

김현조 시선집 ‘우스운 일’ 표지

김 시인은 오래된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지나온 삶의 흔적을 차분히 응시하며 인생을 성찰한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들은 과거의 회상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는 삶의 고단함과 슬픔을 품어 안으며 서정의 힘으로 작고 소박한 것들이 함께하는 사람살이의 본래의 면목을 노래한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작품해설에서 “서정시에서 다루어지는 기억이란 시인이 지나온 시간의 의미를 형상화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며 “김현조의 시편은 내면의 출렁임과 경험적 서사가 기억 속에서 견고하게 결속하는 특성을 지니면서 가장 근원적인 기억들을 향한다”고 분석했다.

시집에 수록된 126편의 시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문득 아득해지는 순간을 선사하는 조용한 힘이 있다. 인간과 삶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독자들은 사람과 자연과 일상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지는 경험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는 시인의 말을 통해 “졸작들이 안목을 가리고 있었다. 시선집이라고 시를 골라보니 쭉정이 뿐”이라며 “‘인쇄된 문장은 도끼로도 파낼 수 없다’는 러시아 속담이 더욱 부끄럽게 한다”라고 고백한다.

정읍 출생인 김현조 시인은 1991년 <문학세계> 시로 등단했다. 시집 <사막풀> <당나귀를 만나 목화밭> <비사벌에는 달 냄새가 난다> 등과 번역서 <요절복통 나스레진 일화집>을 출간했다. 전북시인협회 회장과 전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