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의 한 극장가에 느닷없이 뱀이 풀렸다. 미국영화 직접배급에 반대하며 한국영화의 생존권을 지키려던 영화인들의 처절한 저항, 이른바 ‘뱀 투척사건’이다. 투쟁의 선봉에는 서슬 퍼런 기개의 젊은 감독 정지영이 있었다. 당시 투쟁위원회를 이끌던 감독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옥고를 치러냈다. 이후 사람들은 그를 ‘투사’라고 불렀고 그의 카메라는 권력의 치부를 들춰내는 날카로운 창이 됐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2026년. 여든의 세월을 관통한 그가 다시 우리 앞에 섰다. 78여년 전 제주에서 소리 없이 잊혀진 ‘이름들’을 보듬고서 말이다. 김근태 의원의 고통을 통해 시대의 야만을 고발했던 영화 <남영동 1985>가 폐쇄된 공간 속 고문의 밀도에 집중했다면 신작 <내 이름은>은 폭력이 할퀴고 간 역사의 광범위한 ‘상흔’을 응시한다.
궁금했다. 평생 권력의 치부와 사회의 부조리에 날선 카메라를 들이대 온 그가, 왜 지금 가장 아픈 역사의 상처를 헤집을까. 그리고 최고령 현역 감독을 지탱하는 뜨거운 동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지난 21일 전북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정지영(80) 감독은 물리적인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팽팽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정제된 문장을 헤집고 들어가 마주한 것은 청년의 심장을 가진 ‘현역 감독 정지영’이었다.
-78년 전의 비극인 제주 4‧3을 지금 감독님의 시선으로 다시 꺼내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너무 늦었지요. 많은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예술영화로 4‧3사건을 다뤘지만 대중영화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일반 대중들과 이 문제를 공유하기가 내용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는 의미겠지요. 이제는 그 문턱을 넘어 많은 이들과 아픔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4‧3의 비극은 그간 ‘집단의 고통’으로 그려질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개인의 이름’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관점에 집중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반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려면 개인사적인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집단적인 국가폭력의 문제를 끌어낼 때, 관객들은 비로소 그 비극을 ‘나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영화 제목이 <내 이름은>입니다. 뒤에 생략된 문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제목을 통해 누구의 이름을 되찾아주고 싶으셨나요?
“뒤에 생략된 것은 이름 석자입니다. ‘내 이름은... 정지영!’ 같은 식이죠. 하지만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다 이름이 있지요. 3‧1독립운동,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그러나 4‧3은 여전히 이름을 정하지 못한 채 ‘4‧3사건’이라 부릅니다. 누구는 폭동이라 하고, 누구는 봉기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이름을 찾아줄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가 4‧3을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 출발을 영화 <내 이름은>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수많은 증언과 사료 중에서 영화적 허구를 더해서라도 반드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단 하나의 진실된 장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4‧3이라는 국가폭력으로 3만여 명이 희생당했지만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명확하게 가려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피해자이면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된 이들, 반대로 가해자인데 깊게 들여다보면 피해자인 이들이 엉켜있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런 생각을 안고 영화를 보시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된 장면’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역사의 비극을 다루며 ‘관객의 몰입’과 ‘희생자에 대한 예의’ 사이에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인가요?
“과거를 찾아가는 미스터리적인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고자 했지요. 일단 영화에 몰입하고 나면 관객은 스스로 희생자의 편에 서서 그 아픔을 공유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것이 희생자에 대한 가장 깊은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작비가 시민들의 펀딩으로 모였습니다. 수만 명의 ‘제작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감독님께는 남다른 책임감으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책임감이 정말 무거웠지요. 하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작비를 모아준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 스태프와 연기자가 어느 때보다 열과 성을 다해 임했습니다.”
-제7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내 이름은>을 관람한 외국 관객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국적을 불문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관객이 함께 상처를 공유하는 것을 보고 저 역시 감동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전쟁과 폭력에 직면해 있습니다. 4·3이 드러내고 있는 폭력은 모든 나라가 겪었거나 겪고 있는 보편적인 비극임을 깨달았습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영화를 관람하셨습니다.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숙제를 던진다고 생각하시나요?
“대통령께서는 국가폭력에 관한 한 징벌에 대한 시효가 있어서는 안 될 범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3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토대로 우리 사회는 비극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숙제일 것입니다.”
-감독님 이름 앞에는 이른바 ‘사회파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40여 년간 싸우는 영화를 만들어오셨는데, 조금 편안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싶다는 유혹은 없으셨나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기엔 여전히 12·3 내란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네요. 제발 역사가 뒷걸음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정지영 감독님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에너지가 뭔지 궁금합니다. ‘부조리에 대한 분노’일까요? 아니면 ‘인간에 대한 애정’인가요?
“분노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분노가 없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무관심 또는 외면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제 분노의 뿌리는 항상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나옵니다."
-최고령 현역 영화감독이십니다. 촬영 현장에서 젊은 스태프들과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건 작품을 풍성하게 하는 영양소입니다. 저는 제 의견을 열어놓고 많은 이들과 토론하기를 좋아합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작품을 만드는 스타일입니다.”
- '투사' 혹은 ‘거장’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겨진 인간 정지영만의 부드러운 면모가 있다면요?
“나를 가까이서 접한 연기자와 스태프들은 제가 겉으로는 냉정해 보여도 더없이 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걸 잘 알 겁니다. 투사나 거장이라는 수식어는 사실 정지영의 외피일 뿐이죠."
-훗날 사람들이 정지영을 어떻게 기억하길 원하십니까?
“치열하지 않게, 그러나 진솔하게 자신의 화두를 많은 이와 나누고 싶어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독보적이고 천재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그저 많은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어 했던 대중을 사랑한 영화감독으로 남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정지영은 언제나 여러분과 나란히, 혹은 한 발자국 정도 앞서 걷고 싶어 하는 영화감독입니다. 영화 <내 이름은>을 꼭 보시고 영화가 던진 화두에 대해 마구 비판하거나 동조하며 치열하게 왈가왈부해 주세요.”
정지영 감독과의 서면 인터뷰를 정리하며 인상 깊었던 것은 분노와 애정을 동일시하는 그의 세계관이었다. 80세의 현역 감독은 세상을 향해 뜨겁게 화를 내고 있었고, 그 화의 본질은 ‘사람을 향한 사랑’이었다.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잊고 지낸 이름은 무엇이며 당신의 애정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정지영 감독은
1946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1982년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남부군> <하얀 전쟁> 등으로 한국 사회파 영화의 지평을 열며 거장으로 우뚝 섰다. 1988년 UIP 직배(직접배급) 저지 투쟁 당시 ‘뱀 투척 사건’의 총책임자로 옥고를 치르는 등 스크린 쿼터 사수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이후 영화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를 통해 날 선 사회적 통찰을 증명하며 시대와 호흡하는 저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현재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현역 연출가라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