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불 끄는 영웅들, 마음의 불은 누가 끄나

신세계병원 병원장 김한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김한주

재난 현장과 응급상황의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소방공무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핵심 인력이다.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바라볼 때, 우리는 소방공무원의 헌신 이면에 존재하는 심리적 손상과 정신건강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반복되는 외상 경험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치료와 예방이 필요한 직업성 정신건강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방공무원은 화재, 교통사고, 사망사건, 자살 현장, 아동학대, 대형 재난 등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충격적 사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장애, 불안장애, 수면장애, 알코올사용장애, 소진 증후군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특히 외상은 한 번의 강한 사건보다 반복적이고 누적된 노출에서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여도 감정둔마, 과각성, 악몽, 회피 행동, 짜증 증가, 집중력 저하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소방공무원이 이러한 증상을 직업상 당연한 반응으로 여기며 참고 견딘다는 것이다. 조직문화상 강인함을 요구받는 분위기,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 상담 기록이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동료에게 약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심리 등이 치료 접근을 지연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외상 경험의 영향은 근무 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반복된 긴장과 스트레스는 수면 부족과 만성 피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일상생활과 가족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감정 표현이 줄어들거나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인내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충분한 회복과 심리적 안전망을 함께 마련해야 하는 조직 차원의 과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 지원은 선택적 복지가 아니라 필수 안전 정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외상 사건 직후 심리적 응급처치, 고위험군 선별검사, 정기 정신건강 평가, 익명 기반 상담체계, 교대 근무자를 고려한 야간·비대면 진료 접근성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PTSD나 우울 증상이 확인될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평가를 통해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수면치료,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 등이 체계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특히 관리자 교육도 중요하다. 부하 직원의 수면 변화, 음주 증가, 분노 조절 문제, 결근, 대인관계 위축 등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치료를 권유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신체 부상은 즉시 치료하면서 마음의 부상은 방치하는 이중적 태도는 더 이상 지속되면 안 된다.

더 나아가 소방공무원 스스로도 ‘아프면 치료받는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마음의 상처 역시 치료 가능한 질환이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결코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회복하려는 태도는 현장을 지키는 전문가로서의 책임감 있는 행동이다.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안전의 문제이다. 현장 대응 인력이 건강해야 판단력과 집중력이 유지되고, 시민에게 더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국민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사회가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안전 인프라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소방공무원이 존중받고 보호받는 사회, 그것이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안전의 가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