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오늘의 의료와 교육이 무너지는 진짜 이유

조백환 전북대 의대 명예교수

최근 의료인과 교사에게 잇따라 형사책임을 묻는 사법 판단을 접할 때마다 50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1978년 필자는 전주예수병원 외과 의사였다. 당시 환자를 수술한 뒤 퇴원시켰는데, 이후 법적 분쟁이 발생했다. 그런데 광주고등법원은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예수병원 원장실을 ‘이동 법정’으로 지정해 재판부가 직접 병원을 찾아와 공판을 연 것이다. 중증 환자를 돌보는 수련 의사의 현실을 고려했던 것이다.

병원 원장실에서 열린 공판에서 판사들은 필자의 의학적 설명을 경청했고, 필자는 수술 가운 차림으로 증언했다. 생명을 다루는 현장의 가치를 사법부가 존중했던 시절의 한 장면이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은 어떤가. 의료 현장의 전문가들에게 결과의 책임을 과도하게 묻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불가항력적 합병증이나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까지 의사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일이 반복된다. 거액 배상과 형사처벌이 이어지면서 의료 현장은 방어진료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 의사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기소 건수가 일본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도 이를 보여준다.

대표적 사례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법원은 보호자 요구로 퇴원을 허용한 의사들에게 살인방조죄를 인정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에서는 의료진에 대한 무차별적 구속 수사가 진행됐다. 이런 흐름은 필수의료 기피와 방어진료를 더욱 심화시켰고, 젊은 의사들이 고위험 진료과를 외면하는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의료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장에 대한 사법의 배려가 부족해 기능 수행이 위축되는 분야는 교육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유치원 복도에서 아이가 다친 사고를 두고 교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온 것이 대표적이다.

의료는 인간의 생명, 교육은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영역이다. 모든 상황을 완벽히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형사처벌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우리는 흔히 갈등이 커지면 “법대로 하자”고 말한다. 물론 법적 책임과 피해 구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법이 언제나 완전한 것은 아니다. 복잡한 현장의 맥락과 특수성을 법조문만으로 모두 담아내기는 불가능하다. 현장을 고려하지 못한 법 적용은 사람을 옥죄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일본을 보자. 제도를 손질한 뒤 완전히 달라졌다. 공립학교 교사 관련 민사 책임은 개인이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맡도록 했고, 2015년에는 ‘의료사고조사제도’를 도입해 형사처벌보다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사법당국 역시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형사 기소를 최대한 자제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 역시 국가 차원의 안전망 마련이 시급하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와 훈육이 곧바로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의료 분야에서도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치료 과정의 사망과 합병증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피해 보상은 국가 주도의 보험과 공적 기금으로 해결하고, 전문가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법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 현장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의사와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처럼 대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심하고 헌신할 수 없다. 이제는 국가가 전문가들이 방어가 아닌 책임 있는 적극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