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 들녘에서 자란 숫기 없던 시골 아이가 전북을 이끄는 어엿한 도백으로 도민 앞에 서게됐다.
1968년 김제시 백구면. 넉넉하지 않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난 이원택 전북특별자치도지사 당선인은 철도청 기능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둔 집안의 막내였다.
그가 훗날 170만 도민을 대표하는 도지사가 될 것이라곤 주변 사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평선을 바라보고 뛰어 놀던 까까머리 이원택의 인생에서 본격적으로 사회 활동에 눈을 뜬 건 익산 남성고를 졸업한 뒤 전북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다.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던 대학 캠퍼스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시대의 흐름 속으로 뛰어들었다.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사회문제와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됐고 자신의 안위보다 동지와 선·후배를 챙겼다.
민주화운동 과정에 옥중 투옥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경험은 명예 회복과 더불어 정치 인생에 밑거름이 됐다.
대학 졸업 후에도 그는 안정적인 길 대신 시민사회 활동을 택했다. 시민행동21 사무처장을 역임한 그는 지역 현안에 앞장섰다.
이름보다 역할이 중요했고, 스포트라이트보다 현장이 우선이었다. 이 시기는 정치인 이원택보다 시민활동가 이원택의 시간이었다.
2006년 그는 마침내 전주시의원에 당선되며 처음으로 공직에 발을 들였다. 시민사회에서 쌓은 경험을 행정과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당시 전주시장이었던 송하진 전 전북도지사와 인연을 맺으며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시장 비서실장에서 도지사 비서실장, 도청 대외협력국장을 맡아 두루 행정을 살폈다.
전북의 굵직한 현안이 등장할 때마다 실무 최전선에는 늘 그의 이름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균형발전비서관실과 자치발전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발탁됐다.
지방과 중앙을 연결하는 업무를 맡으며 전국 단위의 정책을 경험했고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과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됐다.
이후 전북도 정무부지사로 복귀한 그는 중앙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전북 현안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김제·부안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농어업 정책과 지방소멸 문제에 집중했고, 새만금 사업과 지역 인프라 구축 등 전북의 미래를 위한 과제를 적극적으로 챙겼다. 2024년 총선에서는 재선에 성공하며 정치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학생운동가에서 시민운동가로, 지방의원에서 행정가로, 다시 국회의원으로 이어진 그의 여정은 화려한 수사보다 실천형에 가까웠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젊은 시절 이원택의 옥바라지를 헌신적으로 해왔다는 사연이 전해진 그의 아내 이은주 도 자치제도과장은 평생을 동지적 관계이자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도지사 선거에서 현 지사에 비해 낮은 인지도를 끌어 올리기 위해 골목골목 마다 ‘택이 택이 원택이’를 스스로 부르짖으며 김제 시골 아이 이원택은 그렇게 도민들의 선택을 받고 전북호의 새로운 선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