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몸속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또 사라집니다. 이왕이면 필요한 이들에게 많이 나누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묵묵히 해오다 보니 어느새 40년 가까이 무언가를 꾸준히 해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신기합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죠.”
헌혈 인구가 갈수록 줄면서 매년 혈액 보유량이 부족해지는 시기가 반복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 10일까지 전북의 누적 헌혈자 수는 4만 5439명으로, 제주·충북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적었다.
헌혈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는 지금도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 헌혈의 집에 400회가 넘는 ‘출석 도장’을 찍어온 이가 있다. 전주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교정공무원 오재율(55) 팀장이다. 오는 14일 ‘세계 헌혈자의 날’을 앞두고 그의 39년 헌혈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 팀장의 첫 헌혈은 39년 전인 1987년 봄,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시작됐다.
“당시엔 지금처럼 헌혈의 집이 없어서, 몇 달에 한 번씩 학교에 오던 헌혈차에서 처음 헌혈을 해봤죠.”
시골에서 올라와 헌혈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그였지만,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며 품어 온 ‘남에게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운동장 한편 헌혈차 앞에서 싹튼 그 마음은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의 삶을 이끄는 방향이 됐다.
“주삿바늘도 별로 안 아프고 5분이면 끝나요”라는 채혈 간호사의 말에 용기를 낸 인생 첫 헌혈. “정말 아프지 않았어요. 피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내 피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대학에 들어가면서 헌혈은 본격적인 습관이 됐다.
“그 무렵 대학가에 헌혈의 집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해서 주기적으로 전혈을 했습니다. 교인이라 술·담배도 하지 않았으니, 당시 대학생치고는 꾸준히 한 편이었죠.” 그는 뿌듯한 웃음과 함께 자신의 인생에서 헌혈이 차지해 온 자리를 설명했다.
이후 성분헌혈이 도입되면서 그의 헌혈 횟수는 더 늘었다. 혈장·혈소판·적혈구 등 혈액의 모든 성분을 한 번에 채혈하는 전혈과 달리, 성분헌혈은 특정 성분만 골라 헌혈하기 때문에 2주가량의 짧은 주기로도 헌혈이 가능하다.
“혈소판 같은 성분은 보관 기간이 일반 혈액보다 훨씬 짧아서 늘 필요로 하는 환자가 많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성분헌혈이 생긴 뒤로는 혈소판 헌혈을 더 자주 하게 됐습니다.”
꾸준한 헌혈을 위한 철저한 몸 관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평일이면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러닝머신을 뛰고, 주말에는 야외에서 10km 이상을 달린다. 평소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며 식습관도 건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몸이 좋지 않은 상태로 헌혈하면, 그 피를 받는 사람이 기분 나쁠 거 아니에요.”
헌혈을 받을 사람을 먼저 떠올리며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태도에서는, 단순한 선행을 넘어선 ‘책임감’이 묻어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헌혈의 순간을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100번째 헌혈”을 꼽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헌혈의 집에 갔던 100회째 헌혈이었는데, 직원들이 깜짝 축하를 해줘서 놀랐죠. 아이들도 아빠를 보면서 헌혈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게 됐고요.” 그는 환한 미소가 가득 담긴 특별한 ‘헌혈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그날을 떠올렸다.
오랜 세월 헌혈을 이어오다 보니 이제는 주변에 헌혈을 권하는 ‘헌혈 전도사’가 됐다. “처음엔 무섭다던 동료들도 막상 해보면 안 아프다고 해요. 한두 번 하다가 몇십 번씩 하게 된 사람들도 있죠.”
습관처럼 이어온 그의 헌혈 횟수는 어느덧 400회를 훌쩍 넘어 457회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헌혈을 계속해 온 이유를 묻자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제 그에게 헌혈은 특별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오히려 허전한 일상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년이 될 때까지 최대한 많이 헌혈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금은 헌혈 가능 연령 상한이 만 69세인데, 이를 늘리자는 논의가 있다고 들었어요. 정년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더 오래 헌혈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문준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