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건축가가 하면 다르다”는 한국 사회의 강한 믿음은 공공건축, 문화시설, 도시 랜드마크를 논할 때마다 해외 유명 건축가의 이름은 일종의 보증수표처럼 등장한다. 이러한 선택과 결과는 ‘국제적 위상 확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 무한에 가까운 신뢰가 한국 도시의 경관과 건축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물론 해외의 저명한 건축가들—예컨대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헤르조그 & 드 뫼롱, 노먼 포스터—이 남긴 건축적 성취는 분명 존중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들의 작품 자체가 아니라, 이들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이다. 해외 유명 건축가에 대한 신뢰가 ‘선택의 기준’이 되는 순간, 건축의 본질인 맥락, 장소성, 공공성은 부차적인 요소로 밀려난다. 설계 공모는 아이디어 경쟁이 아니라 이름 경쟁이 되고, 평가의 중심은 건축적 질문이 아니라 ‘누가 했는가’로 이동한다. 2012년 9월 일본 신 국립경기장 공모전에서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당선했다. 하지만 일본 건축가인 후미히코 마키가 주도하여 ‘가이엔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신 국립경기장 재사유하기라는 심포지엄을 조직하여 자하 하디드의 당선작이 역사적인 맥락을 전혀 따르지 않은 프로젝트라며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였고, 결국 재공모가 이루어지고 일본 건축가 켄고 쿠마의 목조구조의 경기장 프로젝트가 당선되었다.
한국의 주요 공공 프로젝트가 반복적으로 해외 스타 건축가에게 집중되면서, 우리의 땅과 도시는 ‘수입된 이미지’로 채워지고 있다. 해외 건축가의 설계는 종종 그들의 기존 언어를 반복하고 있으며, 세계 어느 지역에 세워놓아도 다르지 않게 느껴질 이미지들을 심어놓기도 한다.
문제는 이 이미지들이 한국의 도시 맥락, 기후, 생활 방식과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채 ‘완성도 높은 오브제’로 도입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논의되고 검토되어온 한강 노들섬에 서울시는 최근에 영국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가 뉴욕에 디자인한 ‘리틀 아일랜드’의 변형된 프로젝트처럼 보이는 노들섬의 ‘소리풍경’은 ‘서울의 섬’이라는 인식보다는 ‘헤더윅의 섬’으로 간주될 만큼, 화려한 해외 명품을 얹어 놓은 듯한 형상이다. 이러한 서울시의 허세는 오랜 시간동안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를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건축이 도시의 언어가 되지 못하고, 도시 위에 얹힌 장식물로 소비된 결과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일본건축가 야마모토 리켄또한 한국에도 좋은 건축가가 많은데, 외국인에게 기회를 주어서, 정작 한국에서는 한국 건축가들이 제대로 설계하고 건축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해외 건축가들에게는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을 마련해주고, 국내 건축가들에게는 최저 공사비 내에서 주어진 규모의 건축물을 완성시켜 내야하는 엄격한 훈련 과제를 주는 이러한 태도는 결국 국내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갈 새로운 구조, 시스템, 재료, 공간 등을 실험하고 구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못하게 되고,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결국 한국 건축의 침체를 초래한다. 이는 능력 부족이 아닌 신뢰의 편중에서 비롯된 구조적 결과이다. 우리의 건축가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의 도시는 결국 우리의 얼굴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