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칼럼] 내발적 발전이란 무엇인가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목적이 뭐야? 목표 말고 목적” 최근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시로 작중 화자를 맡은 황진만의 대사이다. 목표와 목적을 헷갈리지 마라. 목표는 가야 할 길의 이정표일 뿐, 목적이 그 길을 가는 이유라는 점을 여러 번 되묻는다.

이원택 전북도지사 당선인은 도민주권 시대와 내발적 발전을 성장 전략의 전면에 내세웠다. 외부 기업 유치에만 기대지 않고 전북 기업과 인재, 농업·관광·문화 자산을 키워 도민 체감 경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도지사 직속 내발적 발전위원회 신설과 전북성장공사 설립을 공약했다.

그런데 당선인의 내발적 발전론은 아직 철학과 비전 없이 보도자료와 인터뷰 수준에 머물러 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혁신해 기존의 발전 경로를 벗어날 것인가 하는 구체적 그림이 없다.

외려 성장동력을 내부에서 찾자면서도 인수위 활동에서는 반도체 신산업 기업 유치, 신공항 건설, 산업단지 전환 등 전형적인 외발적 개발 환상을 쏟아내고 있다.

이 모순은 목표와 목적을 혼동하는 데 있다. 새만금 반도체 200조 투자라는 가시적 목표에 매몰되어, 왜 내발적 발전을 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 목적, 즉 기후위기 시대 도민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서의 철학이 빠져 있다.

철학이 없으니 과거 김완주 도정의 사회적경제, 송하진 도정의 내발적 발전·생태 문명 전환 담론과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지 못한 채 반도체 전문가를 불러 대기업 유치 특강만 반복한다.

내발적 발전은 지역 기업·조합과 개인의 자발적 학습과 도민 합의를 통한 계획 수립을 전제로 한다. 정립된 경제 이론이 아니라 지역순환경제, 공생경제, 사회적경제 등으로 불려온 개념이다. 전주시 자매도시이자 창조도시로 불리는 일본 가나자와시가 대표적 모델로 꼽힌다. 야마데 타모츠 전 가나자와 시장은 “관광도시는 우리가 추구하는 학술문화도시의 결과일 뿐, 우리의 목표는 아니다”라고 했다.

가나자와는 대기업 공장이나 관광지를 급조하지 않고, 걷기 좋은 거리와 전통환경 보존 조례, 시민이 문화예술을 누릴 공간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삶의 질과 시민 주권이라는 목적이 서자 관광객 유치와 지역 활성화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따라왔다.

내발적 발전 모델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미나마타병과 이타이이타이병 같은 공해병이 드러낸 경제성장의 그늘 속에서 환경보전·복지 확대·자치 확립으로 시민의 기본권을 향상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 한 지역 혁신 단체장들의 성찰과 도전 끝에 탄생했다.

당선인이 내발적 발전에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전북이 당면한 송전탑·새만금·재생에너지 현안부터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킬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위해 전북 땅을 가로지르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거부하고, 새만금 RE100 산단조차 전기가 부족한데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약탈적 전력 구조도 거부해야 한다. 외부 대자본에 내부 자원을 헌납하는 개발의 전형이다. 

새만금 해창갯벌의 생태 보루인 농생명용지 3공구를 태양광 발전소로 내주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산업단지는 김제 화포 배후도시용지나 부안권역 잼버리 부지를 쓰면 된다. 그게 더 빠르다.

전북의 경쟁력은 대기업 이름값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자체이다. 땅과 물과 전기가 있는 새만금을 중심으로 분산에너지 체계와 스마트 전력망을 촘촘히 짤 때 삼성전자 반도체 팹 공장이 전북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