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소유권 등기제도
사람을 사고파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가능했다. 천인 신분인 노비들은 얼마든지 사거나 팔수도 있었고 증여도 가능했다. 노비를 사고 팔 때는 토지나 가옥을 사고 팔 때와 같이 소유권을 이전하고 이를 관청에 신고하여 증빙을 받았는데 이러한 문서를 입안이라 하였다. 입안을 받는 것은 법으로도 규정되어 있었다.
노비는 토지와 가옥과는 달리 출산으로 인한 증가와 도망의 우려가 있는 움직이는 재산(動産)이기 때문에 소유권의 보전은 매우 중요하였고 또한 이중매매로 인한 쟁송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토지매매의 경우보다 입안의 필요성은 더 높았다. 마치 인간에 대한 소유권 등기제도와 같은 것이었다.
사진은 전라도 강진군 열수면에 세거하던 안산 김씨 집안에서 전해지는 문서로 매매문기로부터 입안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문서가 이어 붙여져 있다. 접해있는 부분과 곳곳에 관인이 찍혀있으며 이 문서에는 입안 받는 절차와 매도자의 매매동기, 기타 노비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다.
이 문서에 의하면 1772년 봄에 김재옥은 같은 마을에 사는 김필채로부터 계집종 1명을 사들인 후 매매문서를 첨부하고 관에 입안을 요청햇다. 이를 접수한 강진 군수는 입안을 발급 해주라는 판결을 내리고 매매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매도자 김씨와 증인 김씨를 불러 다시 일종의 확인서에 해당하는 초사(招辭)를 작성한 후에 입안문서를 발급해주었다.
이로써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었는데 이 과정에 소요된 기간은 불과 열흘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늘날 소유권이전 등기 시 매도자와 매수자가 계약을 한 후 각각 서류를 지참하고 관할 등기소에 신고하는 절차와 사뭇 비슷하다.
살펴보면 김재옥이 매득한 복상이라는 계집종은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몸값 열 냥에 팔려 어미 곁을 떠나게 되었다. 당시 그녀의 소유권은 벌써 세 번째 바뀌게 되는 상황이었으니 지금 같으면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에 팔려가는 인간적 고통은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조선시대 노비는 매매가 가능하였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가격도 말 한필보다 쌌으니 비록 사람모습이지만 법과 제도적으로는 사람이 아니라 가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소나 말과는 달리 쉽게 도망할 수도 있는 존재여서 노비의 소유권은 법과 제도로 보존되도록 절차를 둔 것이다.
그러나 두 차례의 전란과 조선 후기 사회체제의 이완은 노비매매제도와 절차에도 변화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즉 노비의 입안 절차 역시 조선후기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관인이 찍히지 않은 문서(白文記)가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법제적인 신분제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가끔씩 현대판 노비라는 제목아래 인간이 인간을 가혹하게 학대라는 기사를 대할 때면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 대한 최선의 가치는 따뜻한 배려와 관심이 아니가 싶다.
/정성미(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원광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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