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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한 사실주의 화풍에 기발한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융합해 가족의 의미와 어린이의 내면을 따뜻하게 관찰해온 앤서니 브라운의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아트센터 이다와 공동으로 오는 20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당 전시장 1층에서 ‘앤서니 브라운展: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을 개최한다. 의학 일러스트레이터로 출발해 탄탄한 묘사력을 갖춘 앤서니 브라운은 1976년 데뷔 이래 고릴라와 침팬지 등 유인원을 서사의 중심에 세워 인간 사회의 단면을 은유해왔다. 대표작 <돼지책> <우리 아빠가 최고야>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가부장제의 모순을 꼬집거나 어린이의 불안과 고독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주제의식으로 독자들과 깊이 교감해왔다. 그림 곳곳에 숨겨진 기발한 상징들은 독자에게 시각적 술래잡기를 제안하며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고, 이러한 성취를 바탕으로 영국의 케이트 그린어웨이상과 아동문학계 최고 권위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성이 담긴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대표 원화 등 191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전시장 구성 역시 평면적인 나열 방식을 벗어나 관람객이 작품 속 상징적 요소를 직접 발견하는 참여형 공간으로 조성된다. 전체 동선은 그림책을 한 장씩 넘기는 듯한 구조로 설계됐으며, 공간 곳곳에 주요 장면을 입체적으로 배치해 관람객이 실제 동화 속을 걷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또한 ‘어린이는 누구나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작가의 철학을 반영한 연계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2017년생부터 2020년생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놀이형 창작체험을 통해, 참여자들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관람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개막 전날인 19일까지 사전 예매할 경우 50%의 얼리버드 할인이 적용되며, 전북도민과 유료회원 및 복지 대상자를 위한 상시 할인도 제공된다. 전시는 유료로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다만 공휴일인 8월17일에는 정상 운영하고 바로 다음 날인 18일에는 하루 쉰다. 자세한 관람 시간과 예매 정보는 전당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완주 남계리 유적’을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기 위해 지정 예고했다고 16일 밝혔다.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는 완주 남계리유적은 조선 후기 신해박해 당시 최초로 순교한 윤지충·권상연과 신유박해 당시 순교한 윤지헌·유항검 등 순교자 유해 및 관련 유물이 출토된 장소로 알려진 유적이다. 이 유적은 조선 후기 천주교의 수용과 확산 과정은 물론 당시 지역사회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남계리 유적은 조선 후기 사회·사상사와 종교문화의 변화를 입증하는 역사 현장으로서 한국 천주교 초기 공동체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관련 기록과 유적의 입지, 역사적 배경 등이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간 남계리유적의 가치 규명을 위해 학술조사와 문헌연구를 지속 추진해 온 완주군은 이번 국가 사적 지정예고는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결과하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국가유산청은 관계 기관 의견수렴과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사적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사적으로 지정될 경우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체계를 갖추게 되며, 향후 학술연구와 정비사업, 문화유산 교육 및 활용사업의 기반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희태 완주군수는 “완주 남계리유적의 국가 사적 지정예고는 완주군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국가적 가치를 인정받은 매우 뜻깊은 성과”라며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를 통해 역사 문화 자산을 미래세대에 전승하고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가 25회차를 맞아 기존 공연장 중심의 축제에서 벗어나 관객과 예술가가 함께 어우러지는 ‘판’의 축제로 변화를 선언했다. 소리축제는 1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 중회의실에서 프로그램 발표회를 열고 올해 축제의 방향성과 주요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오는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도내에서 열리는 올해 축제의 키워드는 ‘소리의 숨결, 모아 판으로’다. 조직위는 축제 25주년을 맞아 소리축제의 출발점이자 정체성인 판소리의 ‘판’ 정신에 주목했다. 특히 올해는 기존 개·폐막작 중심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축제 참여 예술인과 관객이 함께 어울리는 열린 참여형 축제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개막작 대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막 세리머니를 마련하고, 축제 전반을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놀이판 형식으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소리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인 ‘판소리 다섯바탕’도 변화를 맞는다. 기존 완창 중심 공연에서 벗어나 판소리와 전통연희가 결합된 ‘판놀음’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첫째 마당에서는 줄타기와 사자놀이, 기놀이, 열두발놀이 등 전통 연희가 흥겨운 판을 열고, 둘째 마당에서는 소리꾼들이 다섯 바탕의 주요 대목을 선보인다. 마지막은 관객과 예술가가 함께 어우러지는 판굿으로 마무리된다. 무대에는 장문희(춘향가), 송재영(심청가), 김차경(흥보가), 왕기석(적벽가), 김세미(수궁가) 명창이 참여하며, 예인협회 ‘In 천지’가 줄타기와 연희를 맡는다. 젊은 소리꾼들의 무대인 ‘젊은판소리 다섯바탕’도 마련된다.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선발된 이수현, 박시본, 최광균, 고한돌, 소장 등이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올해 소리축제 홍보대사로도 활동한다. 전통 국악의 본질을 조명하는 기획공연도 눈길을 끈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박대성(아쟁)·박범훈(피리)의 ‘산조의 밤’, 젊은 연주자들의 ‘오늘의 시나위’도 관객들을 찾아간다. 특히 올해 축제에서는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와 관객 대화를 결합한 ‘판소리X시네마’도 새롭게 마련돼, 색다른 경험을 전한다. 국내 초청 공연으로는 남원시립국악단의 창극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비롯해 김소라의 ‘여성농악-안녕, 평안굿’, 고창농악보존회의 ‘만두레 풍장굿’, 강릉단오굿보존회의 ‘강릉단오굿’ 등이 관객을 만난다. 전북CBS와 공동기획한 심수봉, 어반자카파 공연도 예정돼 있다. 월드뮤직 프로그램 역시 이어진다. 2014년 초연된 국제협업 프로젝트 ‘쇼팽&아리랑’을 비롯해 캐나다 포크밴드 ‘재니스 조 리 & 큐티즈 밴드’와 소리꾼 송봉금의 협업, 인도 카르나틱 바이올리니스트 요츠나, 말라위 출신 듀오 마달리초 밴드, 아랍음악 그룹 마지카 밴드 등이 참여한다. 축제 공간도 공연장을 넘어 지역으로 확장된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문화 향유 기회가 적은 복지시설과 보호센터 등을 직접 찾아가며, ‘소리 프린지’는 전주 한옥마을과 도심 곳곳에서 시민과 만난다. 팔복예술공장에서는 어린이 소리축제가 열린다. 최철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은 “전주세계소리축제는 25년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악축제로 성장해 왔다”며 “전통 국악의 본질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과 세계적 시각을 더해 소리축제만의 브랜드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전북특별자치도가 157억원을 투입해 전주시 덕진동 일원에 건립 중인 전북문학예술인회관(구 전북문학관) 개관에 빨간불이 켜졌다. 핵심 전시콘텐츠와 작가 선정 기준이 부재하고, 8억원대 용역업체의 전문성 논란까지 겹치면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관의 본질인 텍스트 구축은 외면한 채 건물 준공이라는 실적 맞추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5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하반기 개관을 앞둔 전북문학관은 콘텐츠 기획부터 업체 전문성 부족과 작가 선정 논란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내부 전시 공정률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점이다. 앞서 전북도는 전시 콘텐츠 후보 작가를 14명으로 압축하고 텍스트 위주의 전시를 구상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작가별 텍스트 구축과 필수 영상물 등 실질적인 기획은 미비한 상태다. 대규모 예산이 배정됐음에도 당장 착수해야 할 필수 작업들이 첫발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셈이다. 실질적인 기획이 미비한 상황에서 8억원 규모의 전시물 제작 용역을 맡은 업체의 전문성 논란까지 겹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장애인기업 우선구매 제도로 계약을 따낸 해당 업체의 전시 구성안은 20년 전 용역보고서 수준에 머물러 있어, 최근 열린 내부 회의에서 현장 전문가들로부터 기획력이 낙후됐다는 질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당초 공언했던 것과 달리 개관 일정 소화가 불투명하다는 우려에 대해 도 관계자는 “건물 준공은 6월이지만 전시 부문 준공 시점은 8월”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7월 안에는 실질적인 콘텐츠 구성을 완성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시 작가 선정 과정의 투명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압축된 14명의 명단에는 도덕성 문제로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일었던 특정 작가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져 자격 시비가 일고 있다. 객관적인 평가 지표나 명확한 기준 없이 개관을 코앞에 두고 명단이 오르내리면서 공공문학관의 전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확정되지 않은 1차 후보군일 뿐, 향후 회의를 통해 도덕성 결격사유가 확인되면 즉각 배제하겠다”며 “이번 주 회의에서 다시 작가 선정에 대해 논의할 계획으로 명단은 언제든 변동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도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문학계의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드웨어 완성에만 치중해 정작 문학관의 본질인 작품과 작가 정신의 보존이라는 소프트웨어 구축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이유에서다. 지역 문학계 관계자는 “전문성을 잃은 업체의 부실한 기획안을 쥐고 무리하게 개관 일정만 쫓고 있는 상황”이라며 “철저한 콘텐츠 점검을 통해 객관적인 작품 위주의 전시 개편과 초기 직영체제 전환 등 시설 관리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46회 전국고수대회 최고 영예인 대통령상은 오흥민 씨(38·순창)에게 돌아갔다. 한국국악협회 전북특별자치도지회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가 주최한 이번 대회는 지난 13일부터 이틀간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 공연장에서 열렸다. 학생부와 노인부, 신인부, 일반부, 명고부, 대명고수부 등 6개 부문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93명의 고수가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 전국고수대회는 참가자가 직접 명창을 추첨해 경연을 펼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심사는 박치현 제24회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자를 비롯해 우종양 (사)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김규형 제12회 전국국악대전 대통령상 수상자, 유수정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 임청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고법 이수자, 서은기 국가무형유산 판소리고법 이수자, 최광수 제28회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등 7명의 심사위원이 맡았다. 심사 결과는 참가자 경연 직후 전자 집계 방식으로 현장에서 공개돼 투명성을 높였다. 특히 대명고수부 심사에는 사전 신청한 5명의 청중평가단이 함께 참여해 공정성을 더했다. 무대에는 왕기석·김세미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보유자를 비롯해 김금미, 김찬미, 임현빈, 김선미, 정승희, 강민지, 양혜인, 김정훈, 정윤형 등 대통령상 수상 경력을 지닌 명창들이 올라 고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심사 결과 대명고수부에서 588.80점을 받은 오흥민 씨가 대통령상을 차지했다. 최우수상은 정태수 씨(585.10점), 우수상은 김민철 씨(581점), 장려상은 임용남 씨(576.80점)에게 돌아갔다. 부문별 대상 수상자는 명고부 이우현 씨(국무총리상), 일반부 김민준 씨(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신인부 소재연 씨, 노인부 윤태주 씨, 학생부 장윤성 학생(교육부장관상)이다. 김규형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제46회 전국고수대회는 단일 종목으로 대통령상을 겨루는 권위 있는 대회”라며 “90여 명의 참가자들이 수준 높은 경연을 펼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악에서 장단은 음악의 근간이며 고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며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전한다”고 말했다. 또 “예로부터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는 없다’는 말처럼 고수는 오랜 공력과 연륜이 필요한 분야”라며 “입상 여부에 연연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해 명고수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모든 꽃은 작은 씨앗에서 피어납니다.“ 제8회 아프리카영화제 참석을 위해 생애 처음 전주를 찾은 마이티 포포(본명 자크 무리간데)가 영화제의 서사를 씨앗에 빗대어 건넨 말이다. 예술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씨앗에서 시작해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과정임을 그는 삶으로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르완다계 캐나다인 뮤지션이자 영화인인 포포는 영화제 상영작 <킬러 뮤직(Killer Music)>의 제작자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캐나다 주노 어워드(Juno Awards) 수상자인 그는 이번 작품에서 각본과 제작, 음악을 직접 도맡으며 르완다의 역사와 공동체의 기억을 스크린 위에 촘촘하게 직조해낸다. 포포의 음악 인생은 타인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과정이었다. 예명 ‘마이티 포포’는 캐나다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던 초창기, 동료 하모니카 연주자 래리(Larry)가 작고 마른 그를 ‘강력한 포포’라고 장난스럽게 소개하며 얻은 이름이다. 사람들의 웃음 속에서 탄생한 별명에 대해 그는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정체성을 갖게 되어 기쁘다”며 웃었다. 누군가 건넨 따뜻한 호칭이 한 사람의 음악적 근간이자 인류애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자라난 셈이다. 지난 12일 전주영화제작소 여행자라운지에서 만난 포포는 전주라는 공간이 지닌 에너지에 깊이 매료됐다고 고백했다. 금산사와 한옥마을을 거닐며 감지했다는 ‘고대의 에너지’는 종교적 경계를 넘어선 철학적 교감이었다. 그는 전날 만난 금산사 주지 스님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지구 본연의 에너지가 사람과 사람, 인간과 자연을 잇는 보편적 매개로 작동한다”며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면 전주에 살고 싶을 만큼 이곳의 고즈넉한 기운이 좋다”고 말했다. 이러한 보편성은 음악 영역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금산사 주지스님의 산스크리트어 불경에 그가 자연스레 화음을 얹었을 만큼, 아프리카 전통 음악과 블루스, 그리고 사찰의 창(唱)이 모두 ‘5음계(Pentatonic)’라는 공통의 언어를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적 융합’이 결코 학습으로 터득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단언한다. 문화적 맥락을 체득하며 살아왔기에 블루스, 포크 등 서로 다른 장르들이 자연스럽게 융합될 수 있었고 자신만의 ‘월드뮤직’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 노예들의 고통이 뉴올리언스의 블루스로 피어났듯이 제 음악 또한 삶의 궤적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기획 중인 프로젝트 ‘고스트 노트(Ghost Note)’를 준비하며 그는 AI를 곡의 객관적인 평가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예술’로 논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기술이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예술의 원형인 인간의 물리적 경험과 교감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게 포포의 논리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남긴 흔적이 예술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평화와 정의, 그리고 사랑. 그가 음악과 영화를 통해 길어올리는 언어들은 흔하고 평범하다. 그러나 시대와 국경을 넘어 인류가 지향해야 할 근원적 가치라는 점에서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예술은 그저 기술을 뽐내는 것이 아니에요. 삶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죠. 서로 다른 문화가 음악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와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어요. 그래서 제 작품들이 국경을 넘어, 언젠가 당신의 삶에도 그런 다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라, 다시 보아도 오른팔이 안 보입니다. 두꺼운 겨울에는 감쪽같아 몰랐었는데 반소매 여름에 보니 분명합니다. 그런데, 가끔 산책길에 스치던 저이는 어떻게 밥을 먹을까요? 악수는 또 어떻게 할까요? 악수, 쥘 握에 손 手지요. 힘센 오른손 서로 맞잡는 것이지요. 험한 세월 사방에 적뿐인 세상, 혹시 무기를 숨기지는 않았습니까? 나는 당신을 해할 마음이 없습니다. 안심하고 안심시키는 것이지요. 그렇담 왼팔뿐인 저이는 온통 적이고 항상 불안할까요? 가만 생각해보니 손 못 잡아서 눈 맞잡았겠습니다. 마음 맞잡고 살랑살랑 온기 전했겠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길섶 꽃구경을 하는 저이, 그러게요 건성 맞잡은 손 가랑잎처럼 팔랑거린 내 눈엔 만개한 개망초꽃 안 보였던 겁니다. 다순 기운 전하지 못한 마음에 금계국 안 피었던 겁니다. 악수는 손보다 먼저 눈빛을, 마음을 맞잡아야 상대도 나도 꽃 핀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앞서가는 저이, 오른쪽이 허전할세라 왼쪽이 거듭니다. 모르게 살짝 오른쪽 허공을 받쳐 줍니다. 삼천 노인회에서 가꾸는 꽃밭에 금잔화가 피어납니다. 꺼끄락 있는 곡식의 종자를 뿌린다는 망종(芒種) 아침, 자귀 꽃이 꼭 공작 꼬리 같습니다.
민선 9기 출범을 앞두고 전북 문화예술계 외부 영입 기관장들의 거취 문제가 지역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신임 단체장의 새로운 정책철학 구현과 기존 기관장들의 잔여 임기가 맞물리면서 셈법이 복잡해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조지훈 전주시장 당선인은 “시정의 철학이 바뀌고 가치 구현 방식이 달라졌다면 함께 했던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은 물러나 주는 것이 맞다”며 “강제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장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행정방식에 맞지 않는 분들은 스스로 판단해 주셔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용퇴를 압박했다. 시민의 투표로 시정의 변화가 선택된 만큼 주요 예산과 조직을 쥔 산하기관장 역시 정치적 책임을 지고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순리라는 논리다. 11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전주문화재단(7월)과 전북도립미술관(9월), 전북문화관광재단(10월) 등 문화예술기관 수장들의 임기가 각각 만료된다. 출범 1년 차인 전주관광재단 용선중 대표이사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문제는 지역 문화예술계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며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들의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조직 규모가 큰 전북문화관광재단의 경우 이경윤 대표이사와 최영규 사무처장의 임기가 올 가을까지 남아 있어 거취를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년 임기 만료를 앞둔 전주세계소리축제 핵심 실무진의 거취 또한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관장이 교체되더라도 기존 조직의 실무 수뇌부가 잔류하면 신임 단체장의 정책 철학이 온전히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다. 새 행정부가 하반기 주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시점과 맞물려 사퇴 촉구와 임기 고수 명분이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후임 인선을 둘러싼 하마평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당선인 선거캠프 출신 또는 학연으로 얽힌 인사들의 이름이 자천타천 거론되며 현직 기관장들의 용퇴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로는 문화예술인 A씨를 비롯해 효자문화의집 관장을 역임한 B씨, 고등학교 동문인 연극인 C씨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역시 도지사 당선인 캠프에서 활동하고, 문화예술기관장을 역임한 D씨가 언급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후임자 윤곽이 조기에 수면 위로 오르면서 현직 기관장들의 결단이 임박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단체장 교체 시기마다 반복되는 일괄 사퇴 압박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전주문화재단의 경우 지난해 한국전통문화전당과의 기관통합이라는 구조개편 과도기를 거치고 있어 조직의 연속성을 훼손하고 행정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도내 문화예술계 한 인사는 “새 단체장의 정책철학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 분야는 특수성과 전문성이 필수적“이라며 ”이번 문화예술기관장 재편 과정에서 철학과 전문성이 얼마나 투명하게 적용될지가 새 행정부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주는 문학의 도시다. 수많은 작가의 시선이 머물렀고, 그 문장들은 지금도 골목과 풍경 속에 여운을 남기고 있다. 양귀자의 단편소설 「한계령」도 그렇게 전주를 품은 작품이다.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문학과지성사·1987)에 실린 이 소설은 고향 전주의 철길 동네를 배경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기억을 조용하고도 깊게 그려낸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에 사는 작가인 화자는 이십오 년 만에 유년 시절 친구 박은자의 전화를 받는다. 찐빵집 딸이었던 은자는 이제 경인 지역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가수 ‘미나 박’이 되어 있었다. 전화 한 통은 두 여자의 삶을 가로지른 세월을 불러내고, 화자는 기억을 더듬어 자연스레 기린봉이 보이던 철길 동네, 레일 위로 반짝이던 햇살, 하천 너머 저탄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난했지만 그 시절의 공기는 선명하고, 소설 속 전주는 낭만과 삶의 냄새가 뒤섞인 공간으로 되살아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한 재회담에 머물지 않는다. 화자는 은자의 간곡한 청에도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기억 속 은자를 현실에서 마주치는 순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유년의 풍경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은자는 화자에게 친구를 넘어 사라진 고향으로 향하는 마지막 표지판이었다. 소설의 제목이자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노래 <한계령>은 이 작품의 주제를 압축한다. 화자는 마침내 클럽을 찾아 그 노래를 듣는다.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그 선율 위로 큰오빠의 지친 뒷모습이, 아스팔트 아래 묻힌 흙냄새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겹쳐 든다. 양귀자는 격동의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수많은 한국인이 경험한 고향 상실을 절제된 언어로 포착한다. 고향은 지도 위에 그대로 존재하지만, 마음속 고향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것이 이 소설이 건네는 뼈아픈 깨달음이다. 이 아픔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재개발로 지워지는 동네,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골목 상권, 빠르게 변하는 도시 풍경 앞에서 많은 사람이 여전히 ‘내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화자는 담담하게 고백한다. “누구라 해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었다. 고향은 지나간 시간 속에 있을 뿐이니까.”(338쪽) 그러나 고향은 소멸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들은, 큰오빠까지도 다 변하였지만, 상상 속의 은자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다.”(338쪽) 그 사실 하나가 화자를 버티게 한다. 기린봉은 오늘도 전주 하늘 아래 그 자리에 있고, 레일 위로 미끄러지던 햇살은 이 소설 속에서 영원히 반짝인다. 기억 속 사람이 곧 고향이다. 그를 잊지 않는 한, 고향도 우리 안에 머문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최명표 문학평론가가 편찬한 <전북지역신문 문예기사목록>(신아출판사)은 지역문학 연구의 토대를 구축하고 사라져가는 지역언론자료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물이다. 자료집은 단순히 기사 목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기록을 보존하고 인문학적 연구환경을 개선하려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총 4권으로 구성된 자료집은 편자의 전공인 문예면을 중심으로 제1권부터 제3권은 전북일보(1952~1989)를 다루고 있다. 제4권은 군산신문과 삼남일보, 전북매일 기사를 합쳐서 엮었다. 편자는 책 머리말에서 “활자가 천대받는 세상이다. 세상이 디지털화되어가는 추세 속에서 활자의 수명은 재촉받고 있다”며 "예로부터 전주는 완판본과 태인본으로 유명한 활자의 고장이다. 학문 연구에 소용되는 기초 자료의 확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책 발간에 대해 밝혔다. 책을 편찬한 최 문학평론가는 정읍 출생으로 전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수료했다. 전북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 등을 받았다. 그동안 <해방기사 문학연구> <전북지역사문학연구> 등을 펴냈으며 <유진오 시전집> <신문으로 읽는 식민지 전북>(1~5권) 등의 편서를 출간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전통예술 경연인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것은 제게 가문의 영광입니다.” 제52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시조부문 장원 수상자 최연욱(76·김제) 씨는 수상 소감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주대사습놀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예술 경연대회로 꼽힌다. 특히 국악인과 전통예술인들에게는 오랜 시간 꿈의 무대로 여겨져 왔다. 올해 시조부문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44명의 참가자가 출전해 기량을 겨뤘다. 치열한 경쟁 끝에 장원의 영예를 안은 최 씨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이번이 전주대사습놀이 세 번째 도전이었지만 입상조차 기대하지 못했다”며 “장원자로 이름이 불린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밤잠을 설칠 정도로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최 씨가 선보인 작품은 ‘푸른 산중하에의 엮음질음’ 이다. 사냥꾼에게 짝을 잃은 외기러기를 쏘지 말라고 호소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최 씨는 특유의 절제된 창법과 애절한 감정 표현으로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최 씨가 시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약 15년 전이다. 평생 축산업에 종사해 온 그는 환갑을 넘긴 뒤 새로운 취미를 찾던 중 국악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판소리와 민요를 배웠지만 결국 시조에 매료돼 지금까지 한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는 “시조는 한 음 한 음을 길게 끌어가는 느림의 미학이 살아 있는 장르”라며 “깊은 공력과 복식호흡이 필요한 예술이라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시조를 시작한 뒤 건강도 좋아졌고 삶의 즐거움도 커졌다”며 “지금은 생업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 소중한 존재가 됐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최근 시조가 대중과 점차 멀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요즘은 무엇이든 빠른 것을 선호하는 시대지만 시조는 천천히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있는 예술”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시조의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도록 보급 활동에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김제시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역 내 시조 인구 저변 확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그의 손자와 손녀도 학생부에 출전해 모두 입상을 하며 눈길을 끌었다. 최 씨는 “가족들이 함께 시조를 배우고 즐기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쁘다”며 “앞으로도 김제에서 시조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후학 양성에 힘써 시조의 명맥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예총 전북특별자치도연합회(전북예총)와 사단법인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전북민예총)에 지원되는 지방비 보조금 가운데 상당 규모가 단체 운영비로 쓰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예산이 창작환경 개선보다 조직 유지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예술인의 권익 보호라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는 만큼 지원 체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9일 전북도에 따르면 올해 전북예총에는 3억 5900만 원, 전북민예총에는 1억 2700만 원의 도비 보조금이 각각 편성됐다. 세부 내역을 보면 전북예총은 △전라예술제 개최 1억 9800만 원 △대표 문화예술단체 지원(운영비) 1억 2500만 원 △전북 민속예술경연대회 개최 2000만 원 △오지마을 문화투어 사업 1600만 원 등이다. 전북민예총의 경우 △전북민족예술제 7000만 원 △대표 문화예술단체 지원(운영비) 4400만 원 △문화정책 전국 대토론회 1300만 원 등이 책정됐다. 문제는 예산의 구조적 불균형이다. 지역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목적과 달리 단체의 자체 운영비만 매년 증액되고, 예술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업비는 위축되고 있다. 실제 전북예총 올해 운영비 예산은 2024년 대비 20% 이상 증액된 1억 2500만 원에 달하며, 전북민예총 역시 소폭 증액된 4400만 원을 지원받는다. 이는 예총과 민예총 전체 보조금의 약 35%에 달하는 수치다. 반면 예술인을 위한 창작 지원이나 관련 사업비는 동결되거나 삭감되면서 일회성 행사 개최에만 예산이 소모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공적자금이 특정 문화단체의 유지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부작용의 원인으로 전북도의 관행적 예산 편성과 형식적 성과 평가를 꼽는다. 사업의 실질적 효과를 검증하기보다 오랜 관행과 단체의 규모에 밀려 예산을 배정해왔다는 것이다. 보조금 집행 이후 진행되는 성과 점검 역시 정산서 위주의 형식적인 절차에 그쳐 도민의 문화 향유와 지역 예술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했는지 불투명한 상태다. 이에 대해 전북도는 예산 구조의 특수성과 지역 예술생태계 보존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도 관계자는 “단체운영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는 생활임금 인상에 따라 결정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예술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역 예술 발전이라는 공익을 내세워 도민의 세금으로 상근인력 인건비와 사무실 유지비 등을 보조해주는 방식은 관치 예술의 잔재라는 것이다. 또한 현재 예총과 민예총이 직면한 위기가 단순히 예산 과다나 부족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결함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주문화재단 경영지원부 임승한 부장은 “현재 예총과 민예총이 겪는 어려움은 단순한 예산부족의 문제를 넘어선다”며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조직의 구조적 변화와 함께 지자체의 협력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할 때”라며 정책적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제52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장원의 영예는 정보권(34·충남 금산군) 씨에게 돌아갔다. 11살 때 처음 소리를 시작한 그는 오랜 시간 갈고닦은 끝에 국내 최고 권위의 국악 경연 무대 정상에 올랐다. 장원 발표 직후 만난 정보권 씨는 가장 먼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당장 오늘 입은 갓과 의상도 모두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마련한 것”이라며 “이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가족들과 친구들, 동료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보권 씨가 판소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어린 시절이었다. 부모님을 따라 충남의 금산문화원을 찾았다가 판소리를 접했고, 이후 현재의 스승을 만나 본격적으로 소리꾼의 길을 걷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심청가’ 중 ‘타루비 대목’을 선보였다. 특히 이 대목은 그가 평소 가장 애정을 갖고 연마해 온 소리다. 그는 “저에게 소리를 가르쳐 주신 송재영 스승님의 소리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라 언젠가는 제 18번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연습은 많이 했지만 그동안은 제 뜻대로 되지 않아 공연에서 한 번도 부른 적이 없었다. 오늘 처음 무대에서 선보였는데 만족스럽게 소리를 마쳐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최근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젊은 명창부 장원 수상자가 잇따르는 현상에 대해서는 “주변에도 대회를 준비하는 또래 소리꾼들이 많다”며 “예전보다 젊은 세대의 도전이 늘어난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날 수상의 기쁨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맞닿아 있었다. 그는 “아버지께서 늘 ‘소리 안 하면 혼난다’고 하실 정도로 누구보다 응원해주셨다”며 “제가 소리한 영상도 빠짐없이 챙겨보셨다”고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오늘 무대에 오르기 전에도 아버지를 많이 생각했다”며 “이번 장원은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 같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때는 판소리를 그만두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 같은 소리를 반복해 다듬고 또 다듬는 과정이 지겹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소리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판소리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결국 이번 장원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정보권 씨는 “예선부터 결선까지 치열하게 준비하면서 ‘내가 언제 이렇게 열심히 했나’ 싶을 정도로 소리에 몰두했다”며 “앞으로도 더 좋은 소리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제52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 정보권(34·충남 금산군) 씨가 영예의 장원을 차지했다. 제52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제43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는 8일 판소리 명창부 본선을 끝으로 약 한 달간 이어진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지난달 9일부터 이날까지 전주대사습청을 비롯해 한국전통문화전당,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전주 천양정, 국립무형유산원 등지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는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국악인들이 참가해 열띤 경연을 펼쳤다. 올해 대회는 지난해 신설됐던 무용전공부를 폐지하는 대신, 전주대사습놀이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소리꾼을 발굴하기 위한 판소리 신인부를 부활시키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이와 더불어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를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판소리 명창부 본선 청중평가단을 공개 모집·운영했다. 이번 대회에는 판소리 명창부 14명, 농악부 5팀 211명, 무용 명인부 27명, 민요 명인부 21명, 고법 명인부 15명, 가야금병창 명인부 12명, 기악부 36명, 무용 일반부 23명, 판소리 일반부 10명, 시조부 44명, 고법 일반부 16명, 판소리 신인부 61명, 궁도부 302명 등 총 586팀 792명이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 올해 판소리 명창부 장원에 오른 정보권 씨는 11명의 심사위원 평가에서 93.5점, 50명의 청중평가단 평가에서 4.4점을 받아 총점 97.9점을 기록하며 대통령상과 상금 8000만 원의 주인공이 됐다. 이날 정보권 씨는 지정고수인 정준호 명고와 호흡을 맞춰 ‘심청가’ 중 ‘타루비 대목’을 애절하게 풀어내며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를 이끌어냈다. 김일구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총심사위원장은 “52회를 맞은 전주대사습놀이가 해를 거듭할수록 위상을 더해가고 있으며, 젊은 예술인들의 성장세 또한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며 “경연을 지켜보는 내내 감동적인 무대가 이어졌고, 때로는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였다”고 총평했다. 이어 “전통예술의 맥을 이어갈 젊은 인재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고무적”이라며 “이들이 앞으로 우리 소리를 국내를 넘어 세계에 알리는 명창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상 직후 정보권 씨는 “평생 꿈꿔온 장원을 받게 돼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벅찬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늘 곁에서 응원해 준 가족과 아낌없는 가르침을 주신 송재영 선생님께 가장 먼저 감사드린다”며 “주변에서 상을 받으면 눈물이 난다고 했는데, 지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여서 더욱 놀랍고 감사하다”며 “아버지께서도 누구보다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정진하며 전통 판소리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소리꾼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제52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부문별 입상자 △판소리 명창부=장원 정보권(34·충남 금산군) △가야금 병창 명인부=장원 고혜수(30·광주광역시 동구) △기악부=장원 김우성(24·서울 서초구) △민요 명인부=장원 박영희(44·세종특별자치시) △농악부=부안군립농악단 △무용 명인부=장원 이유나(43·서울 강동구) △시조부=장원 최연욱(76·전북 김제시) △판소리 일반부=장원 최진욱(23·경기도 안성시) △무용 일반부=장원 김재권(24·서울 동대문구) △궁도부=장원 김형전(55·전남 강진군) △고법 일반부=장원 신성자(22·전남 화순군) △고법 명고부=장원 이우현(24·서울 성동구) △판소리 신인부=장원 최승규(71·전북 익산시) ◇제44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 전국대회 부문별 입상자 △판소리=장원 홍가연(국립전통예술고 2학년) △가야금 병창=장원 박단아(국립전통예술고 3학년) △관악부=장원 박시연(국립전통예술고 3학년) △민요부=장원 손하은(국립전통예술고 2학년) △현악부=장원 강명신(한국전통문화고 3학년) △무용부=장원 천예나(브니엘예술고 2학년) △농악부=장원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서울 금천구) △고법부=장원 임현우(국립전통예술고 3학년) △시조 초등부=장원 박준상(영동초 6학년) △판소리 초등부 저학년=장원 노유정(청동초 4학년) △판소리 초등부 고학년=장원 이승우(고창초 5학년)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학문의 심장부, 벨기에 루벤대학교(KU Leuven) 교단에 한국인 학자가 선다. 미술사와 한국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학문적 영토를 개척해온 김소이(39)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1425년 설립된 루벤대학교는 교황청 승인을 받은 가톨릭 명문 대학으로 유럽 내 학문적 권위가 매우 높다. 김 박사는 오는 9월1일부터 이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 미술사를 담당한다. 그동안 프랑스계 백인 학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자리에 한국인 교수가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은 현지 학계에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4일 김제시 금구면에 위치한 고향집에서 만난 김 박사는 “임용되고 정말 놀랐다”며 “간헐적으로 교수임용이 이뤄지는 유럽에 자리를 잡게 돼 기쁘고 놀랍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의 이력은 다채롭다. 전주여고 졸업 후 홍익대에서 예술학을 공부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실기와 문화이론, 여성학까지 경계 없이 파고들었다. 미술을 사회와 문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기른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시선은 올가을 루벤대 대학원에서 선보일 수업에 녹여낼 예정이다. 유럽의 초현실주의 미술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하는 커리큘럼이다. 김 박사는 “유럽에서 한국 미술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흐름을 같이 짚어내는 것이 확실한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대학이 한국인 학자에게 손을 내미는 배경에는 K-콘텐츠의 인기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 북한체제 연구에 머물던 해외 ‘한국학’은 최근 BTS와 넷플릭스 시리즈 등 문화의 힘으로 수요가 폭발했다. 대학들이 앞다투어 한국학 전임교수직을 신설하면서 대중문화가 상아탑의 지형까지 바꾼 셈이다. 그러나 세계무대의 최전선은 여전히 불모지다. 국내 연구들이 영어로 번역조차 안 돼 있어 매 학기 최신 논문을 뒤져 강의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 지역학을 깊이 있는 이론이 아닌 신비한 ‘이야기 보따리’로 치부하는 서구 학계의 은밀한 편견도 벽이었다. 그는 이 벽을 깨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공부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교수 임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또한 냉혹한 잡마켓(Job Market)과의 사투였다. 5년간 매해 50~80개의 원서를 미국 대학에 던졌고 탈락의 고배를 마실 때마다 깊은 무력감이 밀려왔다. 특히 이민자 장벽이 높아지던 시기에는 절박함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늪에서 그를 건져올린 것은 일상의 단단한 루틴이었다. 김 박사는 “주변의 권유로 조깅과 요가를 시작해 매일 정해진 사이클 안에서 단순한 일상에 집중했다”며 “거절을 당해도 ‘자고 일어나면 또 원서 내지 뭐’라는 마음으로 지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일상에서의 마음 수렴이 결국 기회를 잡게 한 원동력이 된 셈이다. 김 박사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지와 인접한 벨기에 브뤼셀의 지리적 이점을 발판 삼아, 앞으로 현대미술 연구를 확장하고 유럽 내 젊은 연구자들을 잇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한때 웹툰 작가를 꿈꿨던 김 박사는 여전히 만화책을 사 모으는 게 가장 즐거운 취미라고 했다. 그는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루벤대 교수 임용도 어쩌면 주변의 우려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다. 수백 번의 거절 앞에서도 중심을 지켜온 고집스러운 몰입이, 이제 유럽의 중심에서 한국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것이다.
가수 박지현이 전주에서 전국투어 콘서트를 열고 팬들과 뜨거운 만남을 가졌다. 박지현은 지난 6일과 7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2026 박지현 콘서트 쇼맨십 시즌2-전주’를 개최했다. 앞서 열린 광주 공연에 이어 전주 공연까지 전 회차가 매진되면서 박지현의 높은 인기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약 160분 동안 진행된 공연에서 박지현은 한층 탄탄해진 무대 구성과 안정적인 가창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오프닝 VCR과 함께 등장한 그는 ‘우리는 된다니까’와 댄스 퍼포먼스를 결합한 무대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이어 ‘나야나’, ‘바다사나이’, ‘녹아버려요’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초반부터 공연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공연 중간 마련된 객석 인터뷰와 토크 코너에서는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친근한 매력을 드러냈고, 객석에서는 응원봉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화답하는 팬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공연 후반부에는 ‘떠날 수 없는 당신’을 열창하며 본 무대를 마무리했다. 이틀간 이어진 전주 공연은 박지현의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 팬들과의 진솔한 소통이 어우러지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한편 ‘2026 박지현 콘서트 쇼맨십 시즌2’는 전주 공연을 마친 뒤 고양, 부산, 성남 등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이 국악의 날을 맞아 전통예술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학술포럼과 공연을 마련했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은 지난 5일 국악원 권삼득홀에서 ‘이어온 국악, 이어갈 국악’을 주제로 학술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국악의 역할과 과제를 논의하는 포럼을 비롯해 네트워킹, 공연 프로그램으로 꾸며지며 국악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포럼은 유영대 전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했으며, 국악 현장과 학계, 공연기획 전문가들이 참여해 전통예술의 미래 방향을 제시했다. 첫 발제에 나선 전주희 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장은 ‘국악은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를 주제로 도립국악원의 역할과 과제를 제시했다. 전 실장은 예술단의 정체성 강화와 제작 역량 축적, 관객 경험 확대, 향유 기반 확충 등을 통해 도립국악원이 지역 전통예술의 거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정매 도립국악원 학예연구사는 ‘세대와 지역을 잇는 국악교육’을 주제로 어린이예술단과 국악연수 운영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찾아가는 국악연수 확대와 외국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 국악 향유층을 넓히기 위한 방안을 제안하며 국악 교육이 미래 관객과 예술인을 양성하는 토대라고 설명했다. 이장민 대전연정국악원 기획팀장은 ‘시민 접점 확장 측면에서의 지역 국악기관 운영’을 주제로 지역 국악기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공연장이 단순한 관람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문화를 경험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국악 역시 다양한 세대와 생활권 속으로 스며들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 국악기관이 공연 제작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과 예술인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윤아 국립무형유산원 공연기획전문경력관은 ‘무형유산의 동시대 활용과 콘텐츠 확장’을 주제로 발표하며 전통성과 대중성, 세계성을 아우르는 콘텐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무형유산을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문화자산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양옥경 전북대학교 학술연구교수는 ‘민속예술의 전승과 지역문화의 지속성’을 주제로 공동체 기반 전승 사례를 소개했다. 양 교수는 국가무형유산 필봉농악보존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대와 직업, 지역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전승 구조를 설명하며 “전통예술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확장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동체 전승은 개인의 기량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경험하고 협력하며 신명을 나누는 과정”이라며 “문화의 우열을 나누기보다 공감과 연대를 통해 공동체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제자들은 종합토론을 통해 국악이 단순한 보존의 대상이 아닌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며 교육과 창작, 향유가 선순환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포럼 종료 후에는 발제자와 유관기관 관계자,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네트워킹 프로그램과 ‘누구나 국악, 모두의 국악’을 주제로 한 공연이 펼쳐졌다. 도립국악원 관계자는 “국악의 날을 맞아 마련된 이번 행사는 포럼과 교류, 공연을 통해 전통예술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함께 모색하는 자리였다”며 “국악이 다음 세대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논의와 실천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3만원만 내면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쉴 수 있는데 거리가 대수인가요?” 제14회 무주산골영화제가 한창인 5일 오후. 영화제의 핵심 공간이자, 관람객 밀도가 높은 무주 등나무운동장은 영화제의 열기로 가득했다. 내리쬐는 햇볕에도 운동장 한가운데 돗자리를 펼친 방문객들의 얼굴엔 여유와 미소가 넘쳤다. 서울에서 버스로 무주까지 찾아왔다는 한 관객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화창한 날씨 덕분에 버스에서 내려 영화제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았다”며 “3만원으로 1일권을 끊었는데, 영화도 보고 공연도 즐기고 돗자리에 누워서 편안하게 쉬었다. 내년에도 무조건 다시 올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 등나무운동장에서는 싱어송라이터 최유리의 공연이 펼쳐져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는 무주산골영화제의 인기는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천안에서 언니와 무주산골영화제를 찾았다는 우지윤(29)씨는 영화제 마지막 날인 8일까지 머무를 예정이다. 최근 몇 년 새 핫한 영화제로 자리잡다 보니 한 프로그램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무주산골영화제의 상징과도 같은 덕유산국립공원 대집회장 상영작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했다. 실제 지윤씨는 3년 전 친구와 함께 무주산골영화제를 방문했고, 숲속에 둘러싸여서 본 영화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매년 영화제를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5일 덕유산국립공원 대집회장 상영작인 ‘인사이드 르윈’, ‘컴플리트 언노운’, ‘돌아보지 마라’까지 세 영화를 모두 관람할 계획이다. 지윤씨는 “다른 영화제와 달리 무주는 자연이 주는 여유가 독보적이다”라며 “덕유산 숲속에서 밤새워 영화를 보는 낭만과 메리트 때문에 해마다 친구들에게도 방문을 강력히 권유한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2030세대를 겨냥한 무주산골영화제의 감성과 공간적 특성이 중장년층까지 끌어안는 세대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딸과 함께 영화제를 찾은 60대 배정숙씨는 등나무 운동장이 주는 아름다움에 놀라웠다고 했다. 다른 영화제 경험이 전무하다는 배 씨는 “딸이 함께 가자고 해서 왔는데 와보니 참 좋다”며 “영화제인데도 마치 시골축제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프로그램들도 다양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관객이 알아서 공간을 찾아오고 스스로 축제를 확장하는 ‘무주 팬덤’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정서적 기획의 결과물이다. 세련되면서도 자연을 해치지 않는 무주만의 공간 기획이 피로감에 지친 현대인들의 취향과 맞물리면서 매년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찾아오는 영화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는 새로운 숙제를 안기기도 한다. 영화제의 흥행이 커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고유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가진 조용함과 여유를 잃지 않으려면 영화제 고유의 밀도를 지켜내야 한다는 문제를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조지훈 부집행위원장 겸 프로그래머는 “우선 영화제를 잘 마무리하는 게 최우선”이라며 “저희는 항상 관객에 의해서 변화를 해왔다. 관객들을 어떻게 더 만족시킬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서 고민하고 움직이겠다”라고 했다.
‘2026 석정문학제’ 전주 행사가 5월 19일부터 6월 2일까지 3차례에 걸쳐 마무리됐다. 이번 행사는 신석정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고, 현대문학이 삶에 던지는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마련됐다. 지난달 19일 신일교회 교육문화관에서 열린 1차 행사는 소재호 시인의 문학 강연이 이뤄졌다. 소 시인은 석정 시인의 작품세계 기저에 존재하는 노장사상을 규명하며 "석정은 유·불·선이 합응하는 거대한 민족의식 토대 위에서 동서고금의 문학을 아우른 위대한 정신적 지평을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진행된 ‘석정 컬로퀴엄’에서는 장조카 신 조영원장의 회고를 비롯해 표순복 시인, 박귀덕 수필가의 발표를 통해 석정의 삶과 문학, 수필세계를 다각도로 재조명했다. 지난달 26일 신일교회 교육문화관에서 진행된 2차 행사에서는 박해람 시인이 ‘인간이라는 정속’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박 시인은 세대 간의 세태 변화를 인정하고 각자의 삶의 속도를 존중하며 시를 바라보는 관점을 명쾌하게 짚어냈다. 참석한 시민들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속도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2일 전주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마지막 3차 행사는 허영자 시인이 ‘문학과 우리들의 삶’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이날 행사에는 석정문학회 김영 시인을 비롯해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허 시인은 덕수궁 석어당의 나뭇결에서 발견한 한국미의 본질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며 소멸의 운명이 지닌 극치의 아름다움을 탐미적 관점으로 풀어냈다.
봄 끝 여름 초입입니다. 전주-군산 산업도로를 달려갔습니다. 보리논 반 모심은 논 반, 들녘이 옛적 반섞이 보리밥 같았지요. 김제시 공덕면 마현리 816-1 육백 살 은행나무 아래, 정양 선생님께서 “어서들 와, 벌써 덥네” 손부채 활랑거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리를 간다던가요? 우리는 넓디넓은 은행나무 그늘에 둘러앉았습니다. 1주기 추도식이 아니라 떡과 술이 있는 시회(詩會)였습니다. 누구는 선생님의 시를 읊었고 또 누구는 선생님과의 추억을 길게 이었습니다. 모두 느릿느릿 더듬더듬 할 말 다했습니다. 플래카드 속 선생님, “다 뻥이야 뻥! 뭘 귀담아들어?”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사람 좋은 웃음 여전하셨고요.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참 세상 대책 없는 막말도 시로 뽑아내는 시인이 선생님 말고 또 누구랍니까? 은행나무 아래 올려 본 하늘, 꼭 사모님 이름을 웅얼거리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후배, 제자 시인들 모여 늦보리처럼 앵두처럼 익어갔습니다. 그러게요, 육백 살 은행나무 가을 소출이 몇 가마일까요? 선생님은 곳곳에 뿌리내리실 것입니다. 태산(泰山)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의 고운 선생도 검단 선사도 아니면서 우리는 배 터지게 술과 시를 마셨습니다. 차수 바꿔 오래 놀았습니다. 보리 익어가는 시절 산들바람 산들거린 하루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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