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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거장 ‘앤서니 브라운’ 원화 191점 들고 전주 찾는다

세밀한 사실주의 화풍에 기발한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융합해 가족의 의미와 어린이의 내면을 따뜻하게 관찰해온 앤서니 브라운의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아트센터 이다와 공동으로 오는 20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당 전시장 1층에서 ‘앤서니 브라운展: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을 개최한다. 의학 일러스트레이터로 출발해 탄탄한 묘사력을 갖춘 앤서니 브라운은 1976년 데뷔 이래 고릴라와 침팬지 등 유인원을 서사의 중심에 세워 인간 사회의 단면을 은유해왔다. 대표작 <돼지책> <우리 아빠가 최고야>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가부장제의 모순을 꼬집거나 어린이의 불안과 고독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주제의식으로 독자들과 깊이 교감해왔다. 그림 곳곳에 숨겨진 기발한 상징들은 독자에게 시각적 술래잡기를 제안하며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고, 이러한 성취를 바탕으로 영국의 케이트 그린어웨이상과 아동문학계 최고 권위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성이 담긴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대표 원화 등 191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전시장 구성 역시 평면적인 나열 방식을 벗어나 관람객이 작품 속 상징적 요소를 직접 발견하는 참여형 공간으로 조성된다. 전체 동선은 그림책을 한 장씩 넘기는 듯한 구조로 설계됐으며, 공간 곳곳에 주요 장면을 입체적으로 배치해 관람객이 실제 동화 속을 걷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또한 ‘어린이는 누구나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작가의 철학을 반영한 연계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2017년생부터 2020년생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놀이형 창작체험을 통해, 참여자들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관람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개막 전날인 19일까지 사전 예매할 경우 50%의 얼리버드 할인이 적용되며, 전북도민과 유료회원 및 복지 대상자를 위한 상시 할인도 제공된다. 전시는 유료로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다만 공휴일인 8월17일에는 정상 운영하고 바로 다음 날인 18일에는 하루 쉰다. 자세한 관람 시간과 예매 정보는 전당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6.16 16:56

25주년 전주세계소리축제, 판소리의 ‘판’으로 돌아간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가 25회차를 맞아 기존 공연장 중심의 축제에서 벗어나 관객과 예술가가 함께 어우러지는 ‘판’의 축제로 변화를 선언했다. 소리축제는 1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 중회의실에서 프로그램 발표회를 열고 올해 축제의 방향성과 주요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오는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도내에서 열리는 올해 축제의 키워드는 ‘소리의 숨결, 모아 판으로’다. 조직위는 축제 25주년을 맞아 소리축제의 출발점이자 정체성인 판소리의 ‘판’ 정신에 주목했다. 특히 올해는 기존 개·폐막작 중심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축제 참여 예술인과 관객이 함께 어울리는 열린 참여형 축제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개막작 대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막 세리머니를 마련하고, 축제 전반을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놀이판 형식으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소리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인 ‘판소리 다섯바탕’도 변화를 맞는다. 기존 완창 중심 공연에서 벗어나 판소리와 전통연희가 결합된 ‘판놀음’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첫째 마당에서는 줄타기와 사자놀이, 기놀이, 열두발놀이 등 전통 연희가 흥겨운 판을 열고, 둘째 마당에서는 소리꾼들이 다섯 바탕의 주요 대목을 선보인다. 마지막은 관객과 예술가가 함께 어우러지는 판굿으로 마무리된다. 무대에는 장문희(춘향가), 송재영(심청가), 김차경(흥보가), 왕기석(적벽가), 김세미(수궁가) 명창이 참여하며, 예인협회 ‘In 천지’가 줄타기와 연희를 맡는다. 젊은 소리꾼들의 무대인 ‘젊은판소리 다섯바탕’도 마련된다.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선발된 이수현, 박시본, 최광균, 고한돌, 소장 등이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올해 소리축제 홍보대사로도 활동한다. 전통 국악의 본질을 조명하는 기획공연도 눈길을 끈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박대성(아쟁)·박범훈(피리)의 ‘산조의 밤’, 젊은 연주자들의 ‘오늘의 시나위’도 관객들을 찾아간다. 특히 올해 축제에서는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와 관객 대화를 결합한 ‘판소리X시네마’도 새롭게 마련돼, 색다른 경험을 전한다. 국내 초청 공연으로는 남원시립국악단의 창극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비롯해 김소라의 ‘여성농악-안녕, 평안굿’, 고창농악보존회의 ‘만두레 풍장굿’, 강릉단오굿보존회의 ‘강릉단오굿’ 등이 관객을 만난다. 전북CBS와 공동기획한 심수봉, 어반자카파 공연도 예정돼 있다. 월드뮤직 프로그램 역시 이어진다. 2014년 초연된 국제협업 프로젝트 ‘쇼팽&아리랑’을 비롯해 캐나다 포크밴드 ‘재니스 조 리 & 큐티즈 밴드’와 소리꾼 송봉금의 협업, 인도 카르나틱 바이올리니스트 요츠나, 말라위 출신 듀오 마달리초 밴드, 아랍음악 그룹 마지카 밴드 등이 참여한다. 축제 공간도 공연장을 넘어 지역으로 확장된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문화 향유 기회가 적은 복지시설과 보호센터 등을 직접 찾아가며, ‘소리 프린지’는 전주 한옥마을과 도심 곳곳에서 시민과 만난다. 팔복예술공장에서는 어린이 소리축제가 열린다. 최철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은 “전주세계소리축제는 25년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악축제로 성장해 왔다”며 “전통 국악의 본질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과 세계적 시각을 더해 소리축제만의 브랜드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6.16 16:34

대한민국 최고 고수는 오흥민⋯제46회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

제46회 전국고수대회 최고 영예인 대통령상은 오흥민 씨(38·순창)에게 돌아갔다. 한국국악협회 전북특별자치도지회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가 주최한 이번 대회는 지난 13일부터 이틀간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 공연장에서 열렸다. 학생부와 노인부, 신인부, 일반부, 명고부, 대명고수부 등 6개 부문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93명의 고수가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 전국고수대회는 참가자가 직접 명창을 추첨해 경연을 펼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심사는 박치현 제24회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자를 비롯해 우종양 (사)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김규형 제12회 전국국악대전 대통령상 수상자, 유수정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 임청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고법 이수자, 서은기 국가무형유산 판소리고법 이수자, 최광수 제28회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등 7명의 심사위원이 맡았다. 심사 결과는 참가자 경연 직후 전자 집계 방식으로 현장에서 공개돼 투명성을 높였다. 특히 대명고수부 심사에는 사전 신청한 5명의 청중평가단이 함께 참여해 공정성을 더했다. 무대에는 왕기석·김세미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보유자를 비롯해 김금미, 김찬미, 임현빈, 김선미, 정승희, 강민지, 양혜인, 김정훈, 정윤형 등 대통령상 수상 경력을 지닌 명창들이 올라 고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심사 결과 대명고수부에서 588.80점을 받은 오흥민 씨가 대통령상을 차지했다. 최우수상은 정태수 씨(585.10점), 우수상은 김민철 씨(581점), 장려상은 임용남 씨(576.80점)에게 돌아갔다. 부문별 대상 수상자는 명고부 이우현 씨(국무총리상), 일반부 김민준 씨(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신인부 소재연 씨, 노인부 윤태주 씨, 학생부 장윤성 학생(교육부장관상)이다. 김규형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제46회 전국고수대회는 단일 종목으로 대통령상을 겨루는 권위 있는 대회”라며 “90여 명의 참가자들이 수준 높은 경연을 펼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악에서 장단은 음악의 근간이며 고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며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전한다”고 말했다. 또 “예로부터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는 없다’는 말처럼 고수는 오랜 공력과 연륜이 필요한 분야”라며 “입상 여부에 연연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해 명고수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6.14 16:17

‘15년 시조 인생의 결실’ 제52회 전주대사습놀이 시조부문 장원 최연욱

“국내 최고 권위의 전통예술 경연인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것은 제게 가문의 영광입니다.” 제52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시조부문 장원 수상자 최연욱(76·김제) 씨는 수상 소감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주대사습놀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예술 경연대회로 꼽힌다. 특히 국악인과 전통예술인들에게는 오랜 시간 꿈의 무대로 여겨져 왔다. 올해 시조부문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44명의 참가자가 출전해 기량을 겨뤘다. 치열한 경쟁 끝에 장원의 영예를 안은 최 씨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이번이 전주대사습놀이 세 번째 도전이었지만 입상조차 기대하지 못했다”며 “장원자로 이름이 불린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밤잠을 설칠 정도로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최 씨가 선보인 작품은 ‘푸른 산중하에의 엮음질음’ 이다. 사냥꾼에게 짝을 잃은 외기러기를 쏘지 말라고 호소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최 씨는 특유의 절제된 창법과 애절한 감정 표현으로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최 씨가 시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약 15년 전이다. 평생 축산업에 종사해 온 그는 환갑을 넘긴 뒤 새로운 취미를 찾던 중 국악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판소리와 민요를 배웠지만 결국 시조에 매료돼 지금까지 한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는 “시조는 한 음 한 음을 길게 끌어가는 느림의 미학이 살아 있는 장르”라며 “깊은 공력과 복식호흡이 필요한 예술이라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시조를 시작한 뒤 건강도 좋아졌고 삶의 즐거움도 커졌다”며 “지금은 생업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 소중한 존재가 됐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최근 시조가 대중과 점차 멀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요즘은 무엇이든 빠른 것을 선호하는 시대지만 시조는 천천히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있는 예술”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시조의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도록 보급 활동에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김제시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역 내 시조 인구 저변 확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그의 손자와 손녀도 학생부에 출전해 모두 입상을 하며 눈길을 끌었다. 최 씨는 “가족들이 함께 시조를 배우고 즐기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쁘다”며 “앞으로도 김제에서 시조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후학 양성에 힘써 시조의 명맥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6.09 17:17

환호로 채운 이틀⋯전주 물들인 박지현의 ‘쇼맨십’

가수 박지현이 전주에서 전국투어 콘서트를 열고 팬들과 뜨거운 만남을 가졌다. 박지현은 지난 6일과 7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2026 박지현 콘서트 쇼맨십 시즌2-전주’를 개최했다. 앞서 열린 광주 공연에 이어 전주 공연까지 전 회차가 매진되면서 박지현의 높은 인기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약 160분 동안 진행된 공연에서 박지현은 한층 탄탄해진 무대 구성과 안정적인 가창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오프닝 VCR과 함께 등장한 그는 ‘우리는 된다니까’와 댄스 퍼포먼스를 결합한 무대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이어 ‘나야나’, ‘바다사나이’, ‘녹아버려요’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초반부터 공연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공연 중간 마련된 객석 인터뷰와 토크 코너에서는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친근한 매력을 드러냈고, 객석에서는 응원봉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화답하는 팬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공연 후반부에는 ‘떠날 수 없는 당신’을 열창하며 본 무대를 마무리했다. 이틀간 이어진 전주 공연은 박지현의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 팬들과의 진솔한 소통이 어우러지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한편 ‘2026 박지현 콘서트 쇼맨십 시즌2’는 전주 공연을 마친 뒤 고양, 부산, 성남 등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6.08 14:10

포럼부터 공연까지…전북서 만나는 국악의 현재와 미래

제2회 국악의 날(6월 5일)을 맞아 도내 곳곳에서 국악의 가치와 미래를 조명하는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펼쳐진다. 국악의 날은 전통예술의 발전과 활성화를 위해 제정된 ‘국악진흥법’에 따라 세종실록에 ‘여민락(與民樂)’이 처음 기록된 날을 기념해 지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지난해 첫 시행 이후 두 번째를 맞은 올해는 전북지역 주요 국악기관들이 공연과 포럼을 마련하며 국악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모색한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이어온 국악, 함께할 국악’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은 5일 오후 2시 본원 권삼득홀에서 국악의 날 기념행사 ‘이어온 국악, 함께할 국악’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국악의 계승과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유관기관 간 협력과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총 3부로 구성되며 포럼과 네트워킹, 공연이 차례로 진행된다. 1부에서는 지역 국악기관 운영 사례와 현장 경험을 공유하는 포럼과 라운드테이블이 열린다. 전주희 공연기획실장과 서정매 학예연구사, 이장민 대전연정국악원 기획팀장, 하윤아 국립무형유산원 프로듀서, 양옥경 전북대 예술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등이 참여해 지역 국악기관의 역할과 무형유산 콘텐츠 확장, 공동체 기반 전승 사례 등을 발표한다. 이어 전승·교육·향유 기반의 현실과 과제를 논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2부에서는 참여자와 관계자들이 함께하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3부 공연에서는 ‘누구나 국악, 모두의 국악’을 주제로 국악실내악과 무용, 판소리 등을 선보인다. △국립민속국악원, 한·중 교류공연부터 국악명상까지 국립민속국악원은 국악의 날을 기념해 다채로운 공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5일 오후 7시 예원당에서는 한·중 전통공연예술 교류공연 ‘동행(同行)’이 열린다. 국립민속국악원 국악연주단과 중국 산둥성 문화관광청 및 산둥성 예술단체가 함께 무대에 올라 양국의 전통예술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중국, 몽골, 일본 등 해외 전통예술 단체와 이어온 국제 교류의 연장선에서 마련됐다. 이어 12일 오후 7시 30분과 13일 오후 3시에는 기획공연 ‘지금 비우다 “여(餘) 유(YOU)”’가 관객을 찾는다. 국악명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제작된 국악명상음악과 힐링음악을 통해 전통악기의 음색과 호흡이 지닌 치유의 가치를 전달할 예정이다. △전주시립국악단, 정기연주회 ‘부활Ⅳ’ 전주시립국악단은 5일 오후 7시 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제248회 정기연주회 ‘부활Ⅳ’를 개최한다. 공연은 황호준 작곡의 ‘다시 피는 녹두꽃-서곡’으로 시작된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역사적 고난과 희망, 민중의 염원을 담아낸다. 이어 이지영 작곡의 소고춤을 위한 무용환상곡 ‘디딤’이 위촉 초연된다. 전주시립무용단과 객원 무용수들이 참여해 국악관현악과 전통무용이 어우러진 무대를 선보인다. 이 밖에도 김수현의 ‘한 여름 밤의 산책을 위한 오늘의 노래’, 김만석 편곡·이지언 협연의 ‘서공철류 가야금산조 협주곡 심수(心授)’, 이정호 작곡의 국악관현악 ‘아부레이수나’ 등이 연주될 예정이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6.01 17:44

달빛 아래 펼쳐진 완판본의 노래, ‘별향단젼이라’ 첫선

전주의 밤이 오래된 활자의 숨결로 다시 살아났다. 지난 23일 오후 7시 30분, 전주문화재단의 전주브랜드공연 마당창극 15번째 시즌 작품‘별향단젼이라’가 한벽문화관 야외공연장에서 첫 막을 올렸다. 올해 작품은 전주가 품고 있는 문화유산 ‘완판본’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름 없는 백성들의 삶과 감정을 목판 위에 새겨 넣던 각수(刻手)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록의 가치와 민중의 목소리를 마당창극 특유의 해학과 소리로 풀어냈다. 무대는 시작부터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았다. 객석의 등받이에 기대 있던 몸들이 자연스레 앞으로 기울 만큼 흡인력이 강했다. 풍남문과 남부시장, 전주 한지와 판소리 오바탕 등 전주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무대 곳곳에 녹아들며 작품의 지역성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정령’의 존재였다. 완판본과 경판본의 세평을 전하고 극의 흐름을 이끄는 이들은 단순한 조연을 넘어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매개처럼 기능했다. 과거 활자문화의 전성기를 설명하면서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록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환기했다. 작품 곳곳에 삽입된 판소리 대목도 반가움을 더했다. 춘향가의 사랑가와 심청가의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은 익숙한 소리의 힘으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지난해 14번째 시리즈 ‘오! 난 토끼 아니오’가 수궁가의 전통적 면모를 강조했다면, 올해는 100% 창작극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택했다. 자칫 낯설 수 있는 소재였지만 전주의 공간성과 익숙한 정서를 적극 활용하며 대중성과 메시지를 동시에 확보했다. 야외공연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매력도 극의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달빛 아래 들려오는 전주천 물소리와 배우들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고, 한벽문화관을 지나던 시민들마저 발걸음을 멈춘 채 난간 너머로 공연을 지켜봤다. 공연 중간중간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온 추임새와 웃음은 ‘함께 노는 판’이라는 마당창극 본연의 매력을 되살렸다. 관객들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장단에 맞춰 호응하는 풍경은 실내극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생생한 현장이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5.25 15:28

“대상은 시작일 뿐, 10월 서울서 더 강한 에너지 보여줄 것”

“대상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함께 무대를 만든 22명의 무용수들이었습니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10월 전국무용제까지 1등을 목표로 달려가 보려 합니다.” 제35회 전북무용제에서 작품 ‘바리여 바리여’로 대상을 차지한 뉴앙스아트컴퍼니의 김동훈 대표 겸 안무자는 수상의 공을 동료 무용수들에게 돌렸다. 지난 1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열린 이번 무용제에서 뉴앙스아트컴퍼니는 대상과 안무상, 연기상 등을 포함해 5관왕에 오르며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뉴앙스아트컴퍼니는 ‘New(새로운)’와 ‘Dance(춤)’를 결합한 의미를 담은 무용단체로, 기존 한국무용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움직임과 무대를 만들어가겠다는 뜻이다. 동시에 ‘뉘앙스(Nuance)’처럼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분위기를 춤으로 표현하겠다는 철학도 담고 있다. 김 대표는 “이번 작품은 혼자 만든 작품이 아니라 22명의 무용수들과 함께 완성한 작품”이라며 “짧은 준비 기간에도 모두가 진심으로 작품에 임해줬고, 서로 믿고 의지하며 무대를 만들었기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품은 한국 전통 설화 ‘바리데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무용이다. 버려졌던 바리공주가 병든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으로 약초를 구하러 떠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간의 상처와 희생, 치유의 과정을 담아냈다. 그는 “바리데기를 단순한 효(孝)의 이야기로 보기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존재의 이야기로 바라보고 싶었다”며 “누군가는 묵묵히 희생하지만 세상은 그 희생을 알아주지 못한 채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 점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예선 무대는 20분이라는 제한 시간 안에 작품을 압축해 선보여야 했다. 김 대표는 “원래는 1시간 규모로 준비했던 작품”이라며 “긴 서사를 모두 담기 어려워 요정과 망자, 그리고 바리의 슬픈 솔로 장면을 중심으로 핵심 감정과 분위기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뜨거운 열정으로 완성된 무대였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컸다. 전북무용제 지원 예산은 약 200만 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22명의 무용수와 대규모 군무를 꾸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충분한 페이를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조심스럽게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어갈 분들을 찾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먼저 연락을 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번 작업을 통해 결국 좋은 작품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고 덧붙였다. 뉴앙스아트컴퍼니는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무용제에서 작품 규모를 한층 확장할 계획이다. 사물악기 연주자 15명을 추가해 무속적인 에너지와 현장감을 극대화하고, 바리데기의 후반 서사까지 보다 깊이 있게 풀어낼 예정이다. 김 대표는 “본선에서는 바리가 약초를 구하고 끝내 만신의 왕이 되어가는 과정까지 확장된 이야기로 보여드리고 싶다”며 “전북 대표로 올라가는 만큼 전북의 힘과 에너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웃으며 “욕심이지만 충분히 우승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끝까지 함께해준 무용수들과 꼭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예술은 결국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억지로 만드는 무대보다 서로를 믿고 즐기며 만드는 무대에서 훨씬 큰 에너지와 감정이 나온다.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을 만드는 안무가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5.19 17:40

거장의 이름 대신 ‘미학적 실체’를 보다…군산에서 베일 벗는 유럽 명화전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 자체다. 20세기 초 고전적 재현의 오랜 관성을 깨부수고 보는 방식의 근본적인 혁신을 일궈냈던 파리 거장들의 시선이 한국 근대사의 궤적을 품은 군산에 자리했다. 군산 JB문화공간에 자리한 전북은행미술관에서 기획전 ‘당신이 보지 못한 유럽 명화전’을 21일 개막한다.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등 거장 12명의 진품 원작 22점을 모은 이번 전시는 이름값 소비에 치중해오던 기존 전시들과는 궤를 달리하며 서구 모더니즘의 혁신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 근대미술의 정신을 추적했던 전북은행미술관 개관전에 이은 두 번째 전시로 일제강점기 시대에 해당하는 1920~30년대, 제1·2차 세계대전 전후의 참담한 시대상 속에서 탄생한 유럽 모더니즘의 원천을 대면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한국 근대 작가들이 갈구했던 조형적 혁신의 실체를 규명한다. 전시의 핵심은 20세기 초 파리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방인 화가들의 공동체인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파리파)’다. 19일 전북은행미술관에서 만난 이흥재 관장은 “피카소, 샤갈, 미로, 달리, 후지타 등은 모두 프랑스인이 아닌 외국계 화가들”이라며 “세계대전의 피폐함 속에서 인간 내면의 심상과 초현실주의, 큐비즘(입체주의)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사조를 혼재하고 발전시켰던 주역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원작 14점이 배치된 프라이빗 갤러리와 판화 8점이 배치된 오픈 갤러리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르나르 뷔페의 1950년 작품 <빵(Le Pain)>을 비롯해 앙드레 마송의 <꽃덤불 속 목욕하는 여인>, 조르주 루오 <인물이 있는 풍경> 등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거장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 화법에 영향을 받은 야수파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풍경>은 거친 붓 터치와 어두운 색채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황폐한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 전시의 주요 작품인 마르크 샤갈의 <마을>은 종이 위에 불투명 수채 물감인 과슈를 사용한 원작이다. 유대인 거주지인 고향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풍경을 배경으로 유대교 교리에 기반한 ‘공중에 뜬 인간과 동물’이라는 도상학적 특징을 푸른색 계열로 구현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의 작품 <꽃과 소녀>는 파스텔톤 배색과 초점이 생략된 검은 눈동자 표현으로 작가 개인적 서사를 시각화했다. 또한 195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친 앙드레 마송의 <꽃덤불 속 목욕하는 여인>과 대상을 다양한 시점으로 해체한 파블로 피카소 <앉아 있는 나부>, 조르주 브라크의 <정물>은 입체주의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준다. 단순한 선과 강렬한 원색 기호가 특징인 호안 미로의 판화 작품 <별자리>는 사진술 발명 이후 현대 화가들이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한 미술사적 전환기를 증명한다. 이 관장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서양 미술 전시나 관련 서적들은 익숙한 화가들 중심의 ‘시각적 편식’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라며 “기존에 잘 알려진 거장들뿐만 아니라 그들 못지않게 새로운 미학적 지평을 열었음에도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었던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선보임으로써 관람객들이 한층 더 넓고 다양한 예술적 시각을 경험하고 느끼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개인 관람객은 미술관 내 오픈갤러리 카페에서 현장 신청을 통해 전문 도슨트 해설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전시는 오는 8월 23일까지 이어진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5.19 16:20

“예술은 어렵다?”…어린이의 순수함으로 문턱 낮춘 유휴열미술관

미술관의 문법을 덜어낸 자리에 아이들의 무구한 상상력이 채워졌다. 유휴열미술관(관장 유가림)은 오는 31일까지 전주와 서울의 초등학생 31명이 창작한 ‘모두의 미술관 아이들이 그린 세상’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예술은 어렵다는 대중적인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됐다. 완결된 기교보다 ‘보는 행위’ 본연의 가치에 집중해 관람객들에게 예술 향유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은 아는 사람만 가는 곳이라는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데 집중한다. 미술관은 ‘모두의 미술관’ 시리즈의 첫 시작으로 어린이의 시선을 선택했다. 이는 어른이 되며 잊고 지낸 직관과 순수함을 예술을 통해 다시 발견하기 위한 시도다. 유가림 관장은 “아이들의 작품이 성인 관람객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통로가 되고, 어린이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공적인 공간에 펼쳐 보이며 예술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여한 아이들은 정해진 주제나 재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품을 완성했다. 도화지 위 그림부터 손으로 직접 만든 창작물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담았다. ‘얼마나 잘 그렸는가’라는 기존의 평가 기준이 아닌, 아이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진심을 읽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 전 세대가 함께 즐기는 소통의 장을 지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엉뚱하고 발랄한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고, 또래 어린이들은 서로의 그림을 보며 공감대를 쌓는다. 유휴열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누구나 차별 없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미술관’의 정체성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5.18 15:44

자매결연 25년, 전주시-가나자와시 ‘종이 인연’ 전통공예로 잇다

한지와 화지라는 종이 인연으로 시작된 전주시와 가나자와시의 동행이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한지문화진흥원과 일본 가나자와시는 19일부터 24일까지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에서 ‘제25회 전주 전통공예전’을 개최한다. 지난 2002년 첫발을 뗀 두 도시의 전통 공예 교류는 20년 넘게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주의 정체성을 담은 한지와 다채로운 공예품 170여 점을 일본 현지에 소개한다. 전시에는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색지장 김혜미자,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소병진, 목조각장 김종연 등 장인들을 포함한 55명의 작가가 참여해 한국 공예의 정수를 선보인다. 한지공예부터 옻칠, 자수, 침선, 입사에 이르기까지 전주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이 담긴 작품들이 가나자와 시민들을 만난다. 두 도시의 인연은 남다르다. 25년 전 자매도시를 맺던 당시 전주의 한지와 가나자와의 후타마타 화지로 제작된 제휴 문서에 서명하며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했다. 이후 매년 서로의 도시를 오가며 작품을 전시하고 기술을 나누는 실질적인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가나자와의 가가상감 작가들이 전주를 찾아 워크숍을 연데 이어, 올해는 전주의 색지장 이수자 허석희 작가가 가나자와 시민들과 함께 ‘한지로 만드는 찻상’ 워크숍을 진행하며 교류의 온기를 직접 전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생활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라야마 다카시 가나자와 시장은 “전통문화 계승에 힘쓰는 두 도시에 걸맞은 교류”라며 감사를 표했고, 김혜미자 이사장은 “전통은 이어지고 확장될 때 더욱 빛난다”며 지속적인 우호를 기원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5.18 15:43

문자의 굴레를 벗고 조형의 실체가 되다, 전주현대미술관 기획전 ‘한글이 숨 쉬다’

580여년 전 세종대왕이 백성을 향한 긍휼한 마음으로 창제한 소통의 도구 한글이 기능적 의무를 내려놓고 시각적인 생명체로 재탄생했다. 전주현대미술관에서 29일까지 열리는 '한글이 숨 쉬다-Font Art 모색’은 납작한 기호로 박제된 문자에 조형적 숨결을 불어넣는 실험의 장이다. 지난해 첫선을 보였던 기획전을 계승한 이번 전시는 필획을 중시하는 전통서예와 색채를 강조하는 현대회화의 접점을 탐색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텍스트가 지운 문자의 질감을 복원하려는 묵직한 논리적 화두를 던진다. 이번 전시에는 김춘선, 송하진, 박인선, 이기전, 이동근, 이성재, 이적요, 이희춘, 차유림, 최동명 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한글을 각자의 문법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 24개 자음과 모음이 품고 있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시각화한다. 특히 서예는 색채를 수용해 회화로 나아가고 회화는 점획의 선형적 골격을 빌려 서예적 깊이를 확보하는 상호침투가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실제로 작품 면면을 보면 관습을 탈피하려는 구체적인 시도들이 읽힌다. 차유림 작품 ‘기록된 신체'는 인체의 원초적 곡선인 누드를 배경으로 문자를 배치해 인간의 관계와 생명력을 은유한다. 문자가 신체적 실체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긴장감을 마주할 수 있다. 이적요는 붓질 대신 바느질이라는 수행적 노동을 택해 문자에 촉각적인 질감을 부여했다. 이희춘의 ‘머무는 것들’은 한글과 한문, 사람의 형상을 융합해 문자의 평면성을 입체적 서사로 전환한다. 서예가 송하진과 최동명은 전통서법의 경계를 허물어 자유롭고 거친 회화적 필치를 드러내어 서예의 새로운 영토를 제안한다. 이기전은 ‘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문자의 조형적 환영을 극대화했다. 실제로 캔버스 위에 투명한 에폭시 액체를 떨어트려 물방울의 굴절과 일렁이는 그림자를 구현한 작업은 문자가 조명 아래에서 입체적으로 부유하는 듯한 시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시도는 디지털 텍스트가 지운 문자의 물성을 회복하려는 의도이자 한글이 가진 기하학적 과학성을 예술적 보편성으로 끌어올리려는 조형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기전 관장은 “추상이든 구상이든 우리가 평소에 보는 어떠한 형상들인데, 한글이라는 문자(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이 관람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것”이라며 “한글이 지닌 심미적인 가치와 정체성 그리고 장르 간의 융합을 눈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5.14 16:44

숲속 도서관에 울려 퍼지는 시와 선율…박태건 시인 낭독 공연

시 낭독과 클래식이 만나 시민들에게 ‘착하고 순한 위로’를 건네는 공연이 열린다. 박태건 시인과 클래식 연주팀 ‘Tutti 앙상블’이 함께하는 낭독 공연 ‘당신에게 건네는 착하고 순한 위로’가 오는 15일 오후 3시 학산숲속시집도서관에서 개최된다. 시 낭독과 클래식 선율, 인문학적 해설이 어우러지는 이번 공연은 총 3부로 구성된다. 박 시인은 “시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본래 시는 인간의 감정을 나누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라며 “일반적인 시 강연 형식에서 벗어나 음악과 함께하는 공연을 통해 시민들이 시를 보다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음악은 감정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예술”이라며 “작곡가들이 음악 속에 담아낸 상실과 슬픔, 사랑의 감정은 시와도 맞닿아 있다. 이를 함께 연결하면 시와 음악 모두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공연에서는 박 시인의 시집 <고려인만두>에 수록된 작품들이 중심으로 소개된다. 시집 속 ‘우스또베’, ‘고래’, ‘근황’ 등 디아스포라와 유랑, 생태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담은 시편들이 바흐와 포레, 히사이시 조 등의 음악과 함께 낭독될 예정이다. 1부 ‘당신의 둥글고 단단한 시간’에서는 어머니들의 굽은 손가락과 삶의 주름 속에 숨겨진 떨림을 이야기하며, 오월의 열매처럼 시고도 달콤한 생의 기억을 돌아본다. 이어지는 2부 ‘눈물과 고독이 스며든 자리’에서는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중앙아시아의 차가운 빗돌 아래 잠든 고려인들의 애환을 담은 시와 클래식 선율의 만남이 깊은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또한 정주(定住)의 욕망을 넘어선 유목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함께 조명한다. 마지막 3부 ‘숲에서 부는 착하고 순한 바람’에서는 예술가의 정치의식과 생태적 사유를 다룬다. 박 시인은 “권력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변화의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 역시 변화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문학적 소신을 바탕으로, 존재의 본질을 응시하고 서로의 삶을 다독이는 연대의 마음을 전할 계획이다. 박 시인은 “사랑 역시 결국 또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바흐의 사라방드처럼 상실의 감정을 담은 음악과 가곡들을 시와 연결해 공연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시는 소리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 ‘보는 시’, ‘생각하는 시’가 되면서 사람들과 멀어진 측면이 있다”며 “이번 공연은 시를 다시 소리와 호흡의 자리로 되돌려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아름다움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그것을 느낄 여유를 잃고 살아간다”며 “숲속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바람과 나뭇잎의 흔들림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일반 시민 2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참여 신청은 전주시립도서관 누리집을 통해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전화(063-230-1857)로 문의하면 된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5.14 16:43

성벽을 허물고 닿은 ‘무목표의 자유’…벽경 송계일의 위대한 귀환

“목표가 없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평생을 정교한 계획과 질서 속에서 붓을 잡아온 화백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역설적이다. 1940년 김제에서 태어난 한국 수묵채색화의 거장 벽경(壁景) 송계일 화백이 10년 만에 고향에서 초대전을 선보인다. 다음달 7일까지 청목미술관에서 열리는 ‘벽경 송계일 초대전’은 60여년간 ‘전통의 현대화’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던 화백의 조형실험이 도달한 현재를 가늠하는 자리다. 12일 청목미술관에서 만난 송 화백은 “지금까지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그림을 그렸지만 앞으로는 무계획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며 “우연적인 작업을 통해 필연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시간을 할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내달리다 보니, 때로는 스스로의 표현이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이번 초대전에서 선보이는 신작 33점은 먹의 번짐과 스며듦, 색채의 확장과 조화를 통해 자연이 지닌 생명의 에너지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우주의 기본 질서인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광대무변(廣大無邊)’의 세계를 먹과 채색의 물성으로 풀어냈다. 특히 바탕에 먹을 짙게 깔고 그 위에 색을 올리는 화백만의 독창적인 기법은 한국화에 유례없는 묵직한 무게감과 깊은 심연을 부여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주제를 사유하고 실체를 확인하는 데만 수개월, 실제 완성까지 근 1년을 쏟아붓는 그의 작업 방식은 고행에 가까운 수행이다. 이번 신작들 역시 그러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송 화백은 화가로서의 명성을 넘어 전북 미술의 기틀을 세운 ‘설계자’이기도 했다. 전남대 교수 시절, 예술대학이 없던 전북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직접 교육부를 설득하며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승인을 이끌어냈고 전북도립미술관 건립에도 헌신적인 힘을 보탰다. “몸은 광주에 있어도 마음은 늘 전주에 있었다”는 그의 고백은 고향을 향한 지독하고도 순수한 애정의 기록이다. 그는 평생을 지탱해온 철저한 계획성으로부터의 작별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연 속에서 필연을 발견하는 문인화적 세계, 즉 어떤 목적도 두지 않는 ‘무(無)목표의 자유’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다. “큰 길에는 문이 없다(大道無門)”는 사상을 가슴에 품고 평생 화단의 경계에서 ‘문제적 작가’로 살아온 화백은 원로의 자리에 안주하기보다 미답의 영역을 탐구하는 모험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앞으로 매일 문인화를 한 점씩 그리려 한다”라며 “화가가 그림을 안 그릴 수는 없으니 습관처럼 문인화를 그려서 새로운 장르와 세계를 후배들에게 제시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수묵의 깊은 울림과 채색의 생명력이 조화를 이룬 이번 전시는 어쩌면 화백이 평생 쌓아온 성취를 내려놓고 마주한 가장 자유롭고 진솔한 고백이 될 것이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5.12 17:29

몸짓으로 빚어낸 전북의 어제와 미래…‘제35회 전북무용제’ 열린다

전북특별자치도를 대표하는 무용인들의 축제가 오는 17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화려한 막을 올린다. 사단법인 대한무용협회 전북특별자치도지회(이하 전북무용협회)가 주최·주관하는 제35회 전북무용제는 단순한 공연의 연속을 넘어 전북 무용의 역사와 흐름을 축적해 온 무대다. 특히 오는 10월 서울에서 개최될 전국 무용제로 이어지는 전북 대표 작품을 선발하는 관문으로서 지역 무용계의 예술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인하는 장이 될 전망이다. 올해 무용제는 전통과 현대,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 생존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세 팀의 경연 작품과 품격 있는 초청·축하 공연으로 구성됐다. 먼저 박수로현대무용단(안무 정승준)은 현대인의 멈출 수 없는 가속된 일상을 다룬 ‘V1’을 선보인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 속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다음 단계로 밀려가는 도시인의 움직임을 통해, 이륙의 순간이 아닌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된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관성을 현대무용 특유의 역동적인 신체 언어로 풀어낸다. 이어 뉴앙스아트컴퍼니(안무 김동훈)는 한국적 정서가 짙게 깔린 ‘바리여 바리여’를 무대에 올린다. 세상에 버려진 상처를 안고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저승으로 향하는 바리의 여정을 그린다. 원망과 사랑이 뒤섞인 감정의 층들을 섬세한 한국무용 사위로 표현하며, 고통 속에서도 다시 몸을 일으키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마지막 경연팀인 하이댄스퍼포먼스(안무 주슬아)는 ‘n번째 빛’이라는 주제로 생명의 진화를 탐구한다. 35억 년 동안 이어져 온 세포의 이동과 생체 전기 신호, 그리고 작용과 반작용의 굴레를 기하학적인 움직임으로 형상화했다. ‘살다’를 넘어 ‘잘 살다’로 나아가려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무대 위에 던진다. 경연의 열기를 더할 화려한 부대 공연도 준비되어 있다. 초청 공연으로는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이수자인 김승애가 ‘십이체장고춤’을 통해 우리 춤의 격조 높은 우아함을 선사한다. 또 색소포니스트 고민석(Kenny-Go)이 ‘A.P.T’, ‘붉은 노을’ 등 대중적인 곡들을 연주하며 관객들과 호흡하는 흥겨운 축하 무대를 꾸민다. 노현택 전북무용협회 지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춤은 인간의 몸을 통해 시대와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근원적인 예술”이라며 “실력 있는 안무가들과 차세대 무용인들이 어우러진 이번 무대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전북 무용예술 발전의 지속적인 동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5.12 17:22

박종수 화백 개인전 ‘어제와 오늘 사이-생명의 노래’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붓을 들어온 원로화가 박종수가 다시 한번 고향의 관람객 앞에 선다. 다음 달 3일까지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종수 개인전의 주제는 ‘어제와 오늘 사이 - 생명의 노래’다. 이번 전시는 그가 평생을 바쳐 탐구해온 ‘전통’과 그 토대 위에서 꽃피운 ‘현대적 재창조’의 결과물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라 할 수 있다. 1980~90년대 오방색 기조의 민화적 풍경으로 한국적 정체성을 탐구했던 작가는 이제 제2의 현실을 추구하는 초현실적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며 예술적 지평을 한층 넓힌 모습이다. 전시장을 채운 그의 화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완연한 ‘주조색’의 변모였다. 전반기 작품이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오방색의 시대’였다면, 후반기인 최근작들은 깊은 사유의 고요함이 배어있는 ‘청색의 시대’를 보여준다. 하늘과 바다를 닮은 은은한 청색조의 배경 위로 불상, 삼족오, 말, 나비 등 이질적인 오브제들이 배치되어 몽환적이고도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 화백의 작업을 두고 “전통과 현실, 그리고 초현실이라는 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상상력을 불러오는 작업”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과거의 기억과 오늘의 현실을 몽타주 기법 등으로 접목하며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지점은 ‘천지인(天地人) 합일’이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상징체계로 꼽힌다. 금빛 삼족오가 푸른 하늘을 가르고 그 아래로 행글라이더를 탄 인간과 갈매기가 어우러지는 광경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생태 환경적 평화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익두 사단법인 민족문화연구소장은 박 화백의 예술 세계에 대해 “전통을 체득하고 그 속에서 독창적인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진정한 화가의 자리를 획득했다”며 “이러한 성취는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온고지신의 정신을 현대적 회화로 구현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소장은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상들은 민족적 기호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생명의 노래”라고 덧붙이며 이번 전시가 갖는 미술사적 의미를 짚었다. 고창 출생인 박 작가는 조선대학교 미술교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해, 지난 1979년 전북예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광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380여 회의 전시를 이어온 지역 미술계의 산증인이다. 전북대와 한양여대 강사를 역임하고 고창고와 전북사대부고 등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써온 그는, 2023년 전북 문화예술대상에 이어 2024년 목정문화상 미술부문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현재 상형전 고문과 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 등으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교동미술관 개인전을 포함해 총 18회의 개인전을 기록하며 여전히 뜨거운 창작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4.29 13:45

[리뷰] 익숙한 고전의 해체와 재구성… 국립민속국악원 창극 ’춘향’

국립민속국악원이 선보인 2026년 대표창극 ‘춘향’은 모두가 익히 아는 고전의 서사를 과감히 덜어내고, 춘향이라는 인물의 내면과 감정선에 집중한 실험적 무대로 관객과 만났다.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에서 열린 이번 작품은 ‘서(序)·이별·그리움·신연맞이·수난·재회·어사출도·다시 사랑가’의 구조 아래 방자·향단 등 주변 인물의 비중을 줄이고, 춘향의 정서적 흐름을 중심축으로 재편했다. 약 80분 분량으로 압축된 공연은 익숙한 ‘춘향전’의 서사적 완결성보다 빠른 호흡과 현대적 감각의 무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김세종제와 만정제 사설을 혼용하고 일부 현대적 어법을 가미한 구성은 전통의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오늘의 관객 호흡에 맞추려는 시도로 읽혔다. 한 국악계 전문가는 “익숙한 춘향 서사를 시대 흐름에 맞게 압축했고, 무대와 의상 역시 현대적 감수성을 더해 신선하게 다가왔다”며 “연출 방향이 분명했고 전반적으로 몰입감도 높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춘향 역을 맡은 서진희 소리꾼에 대해서는 “긴 서사를 중심에서 이끌어야 하는 부담 속에서도 안정적인 소리와 표현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설명보다 음악과 장면 중심의 흐름을 택했다. 대본은 전통 춘향가의 해학성과 발랄함을 덜어내고 보다 정제된 정서와 비극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연출 역시 군더더기 없는 장면 전환과 상징적 무대장치를 통해 한 편의 음악극이자 시각적 이미지극에 가까운 인상을 구축했다. 대나무, 달빛, 그림자 등 시각적 장치와 새롭게 정비된 의상은 비교적 단출한 무대 조건 속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다만 이러한 재구성이 모든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춘향 개인에게 지나치게 비중이 쏠리면서 이몽룡, 월매, 변학도 등 주요 인물의 입체감이 약해졌다”며 “음악극이라면 인물 간 서사와 감정이 유기적으로 교차해야 하는데, 일부 장면에서는 판소리 원전과 새 창작 요소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랑가의 축소와 후반부의 빠른 전개에 대해서는 “춘향전 특유의 서사적 축적과 관계의 결이 줄어들면서 감정의 설득력이 다소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초반 설명이 과감히 생략된 만큼 원전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장면 이해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실제 이번 공연은 ‘춘향의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대신, 고전이 지닌 군상성과 다층적 관계를 상당 부분 덜어냈다. 이는 작품의 방향성을 보다 선명하게 만드는 장점이자, 동시에 일부 관객에게는 ‘춘향전다운 맛’의 축소로 받아들여질 여지를 남겼다. 그럼에도 이번 ‘춘향’은 국립민속국악원이 고전을 단순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려는 방향성을 분명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통 창극이 익숙한 서사를 오늘의 언어로 어떻게 다시 번역할 수 있는지 보여준 하나의 시도이자, 오는 7월 일본 오사카 공연으로 이어질 해외 무대를 앞둔 시험대이기도 하다. 익숙한 고전의 외피를 벗기고 한 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한 이번 무대는 분명 호불호를 남겼다. 그러나 전통의 현재화라는 과제를 향한 고민과 실험이라는 점에서, 이번 ‘춘향’은 그 자체로 충분히 주목할 만한 무대였다. 고전의 본질과 현대적 해석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만들어갈지는 앞으로 이 작품이 더 다듬어가야 할 과제로 남는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4.27 17:14

전통 레퍼토리 총망라⋯정읍시립국악단 상설무대 ‘소리의 정원’

정읍시립국악단이 봄의 정취를 담은 상설무대로 시민들과 다시 만난다. 정읍시립국악단은 4월 상설공연 ‘소리의 정원’을 오는 29일 오후 7시 연지아트홀에서 선보인다. 약 70분간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전통음악의 다채로운 매력을 한 자리에서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공연의 시작은 연주부의 ‘태평소 시나위’로 문을 연다. 이어 창극부와 연주부가 함께하는 신민요 ‘봄노래’, 무용부 김가슬 단원과 연주부가 어우러진 ‘태평무’가 차례로 펼쳐지며 무대에 생동감을 더한다. 특히 이날 공연에는 정읍시립국악원 판소리반 교수인 윤상호 소리꾼이 특별출연해 판소리 ‘심청가’ 가운데 눈대목인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선보일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이후 무용부의 장고춤과 창극부·연주부가 함께하는 입체창 ‘수궁가’ 중 ‘아나 옛나 배 갈라라’ 등 전통의 흥과 멋을 담은 무대가 이어진다. 공연의 대미는 연주부의 실내악 ‘신모듬’이 장식한다. 조용수 정읍시립국악단장은 “한 달 만에 다시 찾아온 상설공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우리 전통음악의 흥과 멋을 더욱 친근하게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읍시립국악단은 다음 달 27일 같은 장소에서 문화산책 프로그램 ‘초록빛에 스며든 몸짓’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4.19 11:09

수만 가닥 한지로 빚은 인고의 결… 차종순 작가가 건네는 ‘휴식'

1990년대 화려한 색채를 뿜어내는 유화 작업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던 차종순(71) 작가는 서구적 재료 너머 ‘한지’라는 소재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그의 행보는 단순히 작업 재료를 바꾸는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예원예술대학교에 한지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학제 개편을 주도하며 한지 예술의 현대화를 위한 학술적 기틀을 닦는데 수십년의 세월을 바쳤다. 이제 그는 복잡한 기교를 덜어내고 한지 본연의 질감 속에 ‘치유’와 ‘명상’의 가치를 담아내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서울 청담 셀리닉 갤러리에서 초대 전시 ‘차종순의 휴(休)’를 열고 있는 그를 지난 8일 전주 오스스퀘어에서 만났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적 화두인 ‘休(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아원고택과 오스갤러리에서 차 작가의 작품을 접한 셀리닉의원 원장은 그의 작품에서 얻은 정서적 회복을 환자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제안하며 만남이 성사됐다. 그의 작업은 예술적 노동을 넘어선 고행이자 수행에 가깝다. 한지를 아주 가늘게 꼬아 수만 가닥의 줄기를 만든 뒤, 이를 캔버스 위에 한 올씩 겹겹이 쌓아 올린다. 하루 10시간 이상 이어지는 반복적이고 고단한 과정에 대해 작가는 “한 가닥씩 붙여 나가는 몰입의 시간은 스님들의 명상과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인고의 과정 끝에 탄생한 작품에는 창작자의 집중력이 투영된 명상적 에너지가 깃들기 마련이다. 최근 작품들은 이처럼 치열한 공정을 거쳐 정갈한 미니멀리즘으로 귀결된다. 한지 장판지의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은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를 것을 권유한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의 전통 가구인 반다지에 그림을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더했는데, 의료 공간을 문화의 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세심한 기획이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담은 영상이 상영되며 각 작품에 배치된 QR코드를 통해 SNS와 연동되어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소통 방식도 도입했다. 그는 “내 작품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점 하나에 불과한 인간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고 일상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어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며 ”수만 번의 손길이 닿은 한지 결 위에서 관객들은 비로소 바쁜 걸음을 멈추고 각자의 본질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2월 27일까지 이어지며 오픈식은 26일 오후 3시에 열릴 예정이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4.12 13:41

의재 김도영,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초대 개인전 성황

의재(義齋) 김도영 예원예술대 미술문화 복지학과 교수의 초대 개인전이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번 전시는 ‘의재 김도영의 지어지서전(止於至書展)’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미술관 2층에서 열렸으며, 서예와 문인화 등 총20여 작품이 출품 돼 서예의 전통적 미감과 작가의 개성적인 필치를 선보였다. 특히 올해 회갑을 맞은 작가를 기념해 마련된 초대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먹의 농담과 여백의 미를 살린 작품들은 고전 서풍의 깊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절제된 구성과 힘 있는 필획으로 관람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전통 서예의 정신성을 바탕으로 작가가 꾸준히 이어온 창작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이번 전시와 동일한 기획은 올해 가을 전주에서도 열릴 예정이며, 신작 또한 함께 공개될 계획이다. 김도영 교수는 “창작 세계가 부족하다고 느껴 전시를 주저하기도 했지만 뜻깊은 자리에 초대돼 영광스럽다”며 “전북의 문화자산 가운데 하나인 서예의 가치를 지역에서 선보이게 될 가을 전시를 계기로 호남 서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으로 더욱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4.09 17:33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