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화 고집하며 그림 위에 ‘시’ 입히는 ‘하울’ 정미경 화가
인물화는 ‘작품하기가 쉽지 않고 먹고 살기 어려워’ 그리기를 기피하는 회화의 한 장르다. 하지만 수십 년째 고집스럽게 인물화를 그려온 진안출신 화가가 있다. 작품 속에 ‘하울(Haul)’이란 아호를 아로새기는 정미경 화가다. 하울 정미경이 지난 18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소재 ‘학고재(學古齋)’ 아트센터(신관) 지하 1, 2층에서 16번째 전시회를 열어 관람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 전시회 기간은 오는 24일까지다. 하울 작가는 진안읍에서 화가 지망생을 양성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연심 씨, 장 보러 가요’, 부제는 ‘당신의 침식이 나의 퇴적입니다’이다. 하울 화가는 “어린 시절 엄마(김연심 씨)와 함께 종종 장에 갔다. 장은 축제행사장 같은 곳이면서도 모든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배울 것 많은 곳이었다”며 “장은 물건을 흥정하고, 팔고 사며, 실랑이하는 모습들이 정겨운 에너지 넘치는 공간”이라고 돌아봤다. 학고재 신관에 전시된 이번 인물화는 35점이다. <여름 소나무>, <별 튀밥>, <아버지의 막걸리>, <불의 절댓값>, <스무고개>, <덤>, <라면 칸타빌레>, <삶의 값>, <첫눈> 등의 제목으로 호남 지역 여러 곳의 장날 표정을 담았다. 그림 속 모델은 전주, 군산, 진안, 무안, 장흥, 구례 등에서 장날에 만난 사람(상인)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연심으로부터>, <다섯의 오월> 등의 제목이 붙은 그림엔 하울 화가의 가족(어머니와 딸) 또는 지인도 등장한다. 전시 작품의 공통된 특징은 지근거리에 서야 보일 정도의 작은 글씨를 적어 넣어 그림의 일부로 편입시켰다는 점. 하울 화가는 지난 2017년부터 자작시를 지어 작품 속에 배치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인물화를 그려 왔다. 글씨들은 원거리에서 보면 그림의 일부로 보인다. 하울 화가는 “자작시가 대상모델에 대한 관람객의 공감을 작가와 일치시키는 감정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기대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하울 화가는 전시회장에 비치한 방명록에 관람객 수백 명의 감동적 감상평을 받았다. “너무나 따뜻한 그림”, “그림도 시도 아름다움의 극치”, “배경 글씨 하나하나가 어우러져 색의 예술이 됐다”, “어머니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다”, “돌아가신 엄마와 잠시 호흡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 등이다. ‘진수’라는 이름의 관람객이 적어놓은 “<연의 마음>이란 그림을 멀리서 봤을 땐 ‘어머니가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세월의 고통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녹록치 않은 삶이 고통스러우셨겠지만 자식 앞에서는 내색 않고 웃으셨을 어머니 모습으로 보여 가슴이 너무 찡했다”는 감상평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하울 화가는 “인물화는 그림 속 모델의 마음까지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리기 어렵고 그러지 않으면 감동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장날에 대해선 “갈수록 편리에 밀려 장이 점점 퇴락하고 있는데 마치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 같아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학고재는 1988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설립된 고서화 전문 화랑으로 경복궁 인근의 유서 깊은 북촌 한옥마을에 있다. 하울 정미경은 지난 2004년 ‘잉여인간론 전(라메르 갤러리, 서울)을 시작으로 이번 전시회까지 경향갤러리, 백송갤러리, 행정안전부 인재개발원, 한전아트센터, 학고재, 전북대병원, 교통미술관, 전북경찰청 등에서 16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 지난 2005년부터는 ‘아트쇼-오늘과 내일 전(세종문화회관, 서울)’을 시작으로 르부르박물관(프랑스 파리), 아모레빌딩(미국 뉴욕), Pit Building F1(싱가포르), 마르스트 미술관(이란 테헤란), Plus 5(스위스), 세종문화회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등에서 18차례의 부스개인전을 가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