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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

"절정에 다다른 인생에 눈길이...그들은 나의 가슴아린 사랑이다"

최근 세상을 떠난 김지우는 그의 첫 소설집이자 마지막 작품인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에서 생의 절정에 다다른 변방의 마이너리그 인생들을 썼다. (desk@jjan.kr)

소설가 김지우(1963∼2007)가 세상을 떠났다.

 

평소 편두통이 심했던 그는 갑자기 뇌압이 올라가 정신을 잃은 뒤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지난 24일이었다.

 

2년 전 그가 낸 첫 소설집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창비)는 그렇게 마지막 작품이 됐다.

 

"내 작품 속 인물들, 노숙을 하고, 보험사기를 치고,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험한 눈길을 걷고, 꽃들이 무슨 죄라고 꽃들을 죽여대고, 감히 서슬파란 대통령각하께 편지쓰기 거부하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생의 절정에 다다른 변방의 마이너리그 인생들.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눈길이 간다.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은 나의 여전한, 가슴 아린 사랑이다.”

 

그가 글쓰기를 멈춘 지금. 다시 펴본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에서 그들은 여전히 일상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눈길' '그 사흘의 남자' '디데이 전날'에는 경제적 결핍을 온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와 '해피 버스데이 투 유'에는 사회의식과 도덕성을 잊고 사는 상류층이 있다. '물고기들의 집'에는 피붙이가 아닌 사람들이 가족으로 모여사는 모습과 '댄싱 퀸'에는 꽃들을 통해 생명에 대한 잔인성을 보여준다. 아슬아슬한 삶이다.

 

문학평론가 황광수씨는 '경제적 조건, 사회적 정의감이나 도덕성, 때로는 미학적 사유를 결여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독자들을 깊숙이 끌어들인다'며 '그의 소설이 우리의 가슴을 따스하게 적시는 것은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가녀린 희망과 전편에 흐르는 문체의 힘 때문이다'고 말한다.

 

또 그의 글쓰기는 다른 여성작가들에게서는 흔치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위트와 유머의 능란한 구사. 소설가 현기영씨는 "위트·유머가 없이 진지하기만 한 연애가 재미없고 그러한 강연도 따분하듯이, 진지한 소설은 실패하기 쉽다는 징크스를 이 작가는 발랄한 동작으로 극복해 내고 있다”며 '날렵하고 발랄한 위트와 유머'를 들었다.

 

'감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엎드려 책을 읽거나 글 나부랭이를 끼적거리며' 그는 어린시절 고향집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키워나갔을 것이다.

 

"내가 자란 전주 고향집 화단엔 도심 한복판임에도 과실나무와 꽃나무들이 무성했다. 채 봄이 되기도 전 노란 수선화가 피고 상사화가 애처로운 꽃대를 올리면, 앵두꽃, 모과꽃, 철쭉, 영산홍, 석류꽃, 감꽃, 모란, 작약, 장미, 백합, 대추나무순, 무화과나무순들이 잇달아 피어나고, 수목들 틈새, 양지바른 틈, 물고추를 갈고 들깨를 갈던 돌확 옆에서 고추꽃, 부추꽃, 상추꽃, 파꽃, 쑥갓꽃, 깨꽃, 머위, 아욱들이 여릿하니 피고 자라며, 담장을 따라 붉은 넝쿨장미가 숭얼숭얼 피어오르면 아름다움은 절정을 이뤘다.”라고 첫 소설집의 '작가의 말'은 시작된다.

 

2000년 단편 '눈길'로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그. 늦깍이의 한을 풀듯 활발한 문단 활동을 했으면서도 그의 고향 전북에서는 그를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다.

 

"혹독한 이분법으로만 살았던 내 젊은 날, 나의 독설에 알게 모르게 상처입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하고 싶다.”

 

소설가 김지우가 서둘러 떠나고 난 자리, 그가 남긴 한 마디는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를 잊고 살아 미안하다 하고 싶다. 그리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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