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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남북 화해와 상생의 길은 어디에

'손님' 황석영 지음·창비사

외세에 의한 점령과 분단으로 시작되는 한국현대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좌우·남북의 대립과 갈등은 급기야 한국전쟁으로 이어져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각인했다. 한국전쟁은 남북의 분단정권이 서로 무력으로 통일을 추구한 결과의 산물이다. 북한정권은 남한을 일제로부터 아직 해방되지 않은 지역으로 간주했고, 남한정권은 북한을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소위 ‘빨갱이’ 정권으로 규정했다.

 

북한은 1949년 중국내전이 종결되자 이제는 우리 차례라는 식으로 치밀한 전쟁준비를 거쳐 ‘조국해방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남침을 개시했다. 서전에서는 그들이 생각한 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유엔군(미군)의 개입으로 전황은 역전되었고 이제는 남한정권이 ‘북진통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38도선을 넘어 북진했다. 꿈이 거의 실현되려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중국의 개입으로 전황은 다시 역전되어 후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후 전쟁은 38도선 부근에서 교착상태에 빠졌고 결국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전쟁은 남북이 서로 무력으로 통일을 해보려고 했으나 외세의 개입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막대한 손실만 남기고 좌절된 전쟁이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는 무력통일은 불가능하며 평화통일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것을 한국전쟁은 역사적 교훈으로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다.

 

전쟁의 과정에서 북한정권이 무자비한 숙청을 자행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한정권과 미군이 자행한 ‘빨갱이’ 사냥은 반공교육 속에서 은폐되고 왜곡되었다. 특히 북한에 진주한 이후 북한지역에서 자행된 살육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창비사)은 한국전쟁시 황해도 신천지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문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그려낸 걸작이다. 형제간에 얽힌 아픈 과거를 소재로 한국전쟁과 남북현대사로 이어져온 민족의 한과 상처를 작가 특유의 리얼리즘으로 어루만지며 화해와 위로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미국 브루클린에 사는 류요섭 목사는 고향방문단 일행으로 북한에 가게 되는데, 방북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그의 형 류요한 장로가 숨을 거두는 일이 발생한다. 그 후 알 수 없는 꿈과 환영에 시달리기 시작한 류요섭은 유품으로 남은 수첩에서 요한 형이 박명선이란 여인을 만나기로 했다는 메모를 발견하고 그녀를 찾아 로스앤젤레스로 향하지만, 양로원에서 홀로 살아가는 박명선은 류요한 장로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풀지 않고 동생 요섭에게도 냉대로 일관한다. 결국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요한은 화장하고 남은 형의 뼛조각 하나를 가지고 평양으로 떠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르는데, 홀연 망자의 유령이 나타나 고향으로 가는 그와 동행하게 된다.

 

류요섭은 초현실화 속에 걸어들어 온 듯 멍한 기분으로 평양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고향인 황해도 신천으로 향하고, 한국전쟁 당시 ‘미제’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사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학살박물관’을 참관한다. 그곳에서 류요섭은 당시 기독청년이던 형과 연관된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고는 몸서리치며 눈물짓는다. 미군에 의해 저질러졌다지만 사실은 우익기독세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만행이었다.

 

작가도 밝히듯이 ‘손님’이란 주체적 근대화에 실패한 우리에게 외부에서 이식된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가리킨다. 작가는 1950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사건을 배경으로 이 땅에 들어와 엄청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고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와 그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인간군상들의 원한과 해원을 그려냄으로써, 이제야 겨우 냉전의 얼음이 녹기 시작한 한반도에 화해와 상생의 새 세기가 열려나가기를 희망한다. 「손님」은 형식적인 면에서도 황해도 진지노귀굿의 얼개를 차용하여 작가 특유의 리얼리즘을 전개한다.

 

/이규태(한일장신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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