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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심장 불끈 뛰었던 과거 생생하게'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황광우 지음...창비

20년전 서울시청 앞 이한열 장례식에 모인 100만 인파. (desk@jjan.kr)

‘1987년 7월 한 학생의 저승 가는 길이 슬퍼서 100만 민중이 모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것은 여느 역사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사건이었다. 1924년 러시아의 위대한 혁명가 레닌이 뇌일혈로 쓰러졌을 때, 끄레믈리 궁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모이지는 않았다. 1948년 인류의 성자 간디가 저격당해 죽었을 때, 그의 장례행렬에 이렇게 많은 군중이 모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한렬은 혁명의 지도자도 아니고 인류의 성자도 아닌 그냥 스무 살의 무명 학생이었다. 그런데 100만의 인파가 그의 주검을 싣고 떠나는 운구차의 뒤를 다랐다. 연세대에서 시청 앞 광장까지. 억지로 나온 이는 없었다. 모두 자신의 발로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어디서부터 흘러온 역사의 강물이 여기까지 온 것일까?’

 

 

‘들어가며’로 시작되는 이 책은 묻는다. 어디서부터 흘러온 역사의 강물인가.

 

황지우 시인의 동생, 황광우씨가 쓴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창비)는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이다.

 

80년 광주항쟁 전후부터 87년 6월 항쟁까지, 학교와 공장과 감옥과 거리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이들에게도 꿈은 있었으리라.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고교시절 부터 반독재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제적되었던 그는 자신의 꿈을 접으며 군사독재정권과 숨가쁘게 대결하던 수많은 젊음들을 그 시대를 겪었거나 겪지 못한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한다.

 

이야기는 그가 검정고시를 쳐서 1977년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입학한 이후 그의 삶의 행로를 따라 전개된다. 신림동 단칸방에서 둘째형 황지우 시인과 함께 살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창조와 비판이 결여된 당시의 대학 분위기, 학회 선배들의 교조적인 태도와 대안 없는 비판에 실망했던 대학생활, 학생운동에 연루돼 육군 교도소에서 보낸 시간들…. 80년 김대중 내란 사건에 연루돼 모진 고문을 받던 황지우 시인을 구하기 위해 수배생활 중인 그를 경찰에 넘겨줄 뻔 했던 어머니의 기막힌 심정까지 섬세하게 묘사됐다. 자신의 체험과 관련자들의 증언, 기록사진 등은 생생한 역사다.

 

그의 말대로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다. 잠기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서 어떤 교훈을 끌어내고 싶지 않다. 역사에서 필연이란, 과거를 살해하고 난 뒤 죽은 시체에서 꺼낸 뼈다귀일 뿐이다. 그것은 생명체가 아니다. 나는 청년들로 하여금 심장이 불끈불끈 뛰었던 우리의 과거를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만지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20년 전 청년들의 젊은 날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처럼 삶의 호흡을 느끼면서, 철학처럼 삶의 근본을 사유하는 뜻있는 기회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황씨. 그는 나즈막하게 말한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책 제목은 윤동주의 시 ‘사랑스런 추억’의 한 구절에서 빌려온 것이다.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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