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의사의 치료행위는 구체적인 철학이다.” 독일의 저명한 실존철학자이자 정신병리학자인 야스퍼스는 의술이 단순히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몸을 다루는 철학적 행위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건강과 질병 속에 노출되어 있으며, 싫던 좋던간에 우리는 병원을 방문하고 의사를 만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병원에서 내 몸이 마치 하나의 기계처럼 의학적 관찰과 기술의 대상이 되는 불쾌한 경험을 하곤 한다.
이러한 현대의학의 문제점과 우리가 병원에서 경험하는 근원적 불편함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있는 책이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의 『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이다. 철학적 해석학을 통해 잘 알려진 그가 93세에 펴낸 이 책은 건강의 수수께끼, 현대과학과 의술, 철학과 실천의학, 치료와 대화, 불안 등의 문제에 대해 삶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려 극심한 척추통증을 경험했고 좌골통증을 앓았던 그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통해 현대 의학이 품고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자신의 말년에 성찰하고 있다.
가다머는 "여러 과학 가운데서도 의학은 결코 테크놀로지로써 이해할 수 없는 과학”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계량적 방법으로 객관적 표준값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건강과 질병을 이해하고자 하는 현대의학의 경향이 가장 큰 의학적 실수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환자의 눈으로 질병을 바라보거나 환자의 목소리로 질병에 귀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대신 기술적으로 아주 복잡한 측정 도구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읽고 건강을 표준값에 의해 규정하려는 현대의학적 시도는 넌센스라는 것이다.
그는 건강이란 삶의 리듬이고, 평형상태가 스스로의 균형을 잡아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며, 자기 자신과의 조화상태라고 보면서,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적합하게 치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전문화가 우리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 데 근대 문명의 비극이 있다고 보면서, 그는 이제 우리가 질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신체가 유기적인 자체 방어 시스템으로 우리의 '내적' 평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자연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환자와 의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독일어 단어 '베한들른(behandeln)'은 손으로 조심스럽고 책임감있게 환자의 몸을 만져봄으로써 환자가 겪는 고통을 확인하고 고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환자의 노력과 긴장을 감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료란 동시에 환자를 대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또한 봉사한다는 뜻이 있다. 건강이란 이러한 세심한 배려와 존중 속에서 회복되는 것이다. 이 책은 진정한 건강이 무엇인지, 왜 치료에 인간적인 소통이 필요한지, 현대의학이 왜 따뜻한 의학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등과 같은 현대의학에 보내는 노철학자의 성찰적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김정현 교수(원광대 철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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