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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족징

친척이라는 이유로 빚 대신 갚아

신사년 방철두가 족징의 억울함을 호소한 탄원서. (desk@jjan.kr)

'돈'이라는 한 글자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하기도 하고,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문제로부터 갚는 것에 이르기까지 예나 지금이 사람들이 하는 모양은 비슷하였다. 돈을 빌리는 연유야 사람들마다 제 각각이겠지만, 오죽이나 급했으면 남의 돈을 빌려 쓸까하는 점에 있어서는 예외가 없을 것이다. 또한 돈을 빌린 사람은 정해진 기한 내에 정해진 약속에 따라서 그 돈을 갚아야 하고 그것은 사회가 얼마나 건전한가를 가름할 수 있는 사회적 신용의 잣대이기도 하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양쪽 중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다른 마음을 가질라치면 항상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돈을 빌려 간 사람이 갚지 않을 경우, 빌려 준 사람은 십중팔구 그 가족에게 돈을 갚도록 요구하기 마련이다. 가족이나 친척이라는 이유로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1861년에 순천에 사는 장전, 장형, 장숙 등은 일가인 장기열이 진 빛 4,600냥을 갚아야 하는 딱한 사정에 빠졌다. 장기열이라는 자가 4-5년 동안 서울 등지로 다니면서 진 빚을 채무자들이 문중 일을 하면서 빌려간 것이라고 소송을 해서 문중에 그 빚을 갚도록 수령의 판결을 받아 내었기 때문이다. 이에 장전 등은 300냥을 갚고서 도저히 갚을 길이 없었기에, 관찰사에 탄원서를 올려 개인적인 빚 때문에 억울하게 족징을 당할 이유가 없으므로 잘 처리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또한, 전라도 벽사역(碧沙驛)에 살던 방철두는 횡폭한 관리 때문에 빌리지도 않은 빚을 떠 안기도 하였다.

 

방철두는 벽사역 관리 방용기의 수탈을 피해서 장흥군 부평면으로 이주하였는데, 사람들의 속이고 재물을 편취하며 힘없는 주민들에게 잔학하게 굴던 방용기가 교활하게 공전(公錢) 70여냥을 빌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였고, 또 영채(營債) 21냥을 빌려가 족징하는 등 4년여 사이에 230여냥을 편취 당하였다. 이에 방철두가 방용기와 옛 영주인(營主人) 채동렬을 고소하여 이 돈이 방용기가 빌려갔음을 기록하게 하였으나 채동렬이 이를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에게 횡포를 부리니 원통하여, 관찰사에게 처리해달라고 호소하였다.

 

이처럼 친척이라는 이유로 또는 이름을 도용당한 것 때문에 돈을 대신 갚아야 하는 걸 족징(族徵), 징족(徵族)이라 하였다. 우리들이 흔히 조선후기 군역을 피하여 도피한 자가 있으면, 당사자가 납부하여야 할 군포를 이웃사람에게 부담시키거나, 그 친척들에게 징수하는 "족징”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소송 판결에 의해 국가로부터의 추징된 세금을 환급 받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성씨가 같다는 이유로 족징에 시달린 사람들은, 세금을 내라면 철렁거리는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내고 마는 힘없는 민초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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