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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이병천 소설집 '사냥'

책 읽는 습관이 천박하여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펼쳐보는 경우가 드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은 지난한 독서의 반복이 싫어서이다. 타고난 재주도 없어 일독(一讀)으로 이해를 완성할 줄도 모르면서도 그렇다. 서투르기 그지없는 독서 습관이지만 혼잣속으로는 그렇게 책장을 닫아두는 게 오히려 독서 여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집 「사냥」만큼은 가까이 두고 늘 펼쳐본다. 이 책에는 중단편 소설 12편이 들어 있다. 하지만 맹세컨대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책의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지는 않았다. 먼저 표지의 제목을 읽고 차례대로 그 다음장을 넘기면 하얀 백지에 작가의 친필 서명이 있다. '1998년, 새 만남을 기억하며'라고 했으니 벌써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렇듯 나는 언제라도 먼저 이 한 문장을 일독하여 '고달픈 장정을 떠나기 앞서서 신발끈을 고쳐 매듯' 준비를 한다. 그리하여 한편 한편의 소설을 읽어가는 맛이란 풀코스 요리를 시켜놓고 다음에는 어떤 맛있는 음식이 나올 것인지 기대해 보는, 결코 남들에게 나눠주고 싶지 않은 은밀한 즐거움이 있다. 그러다가 중간에 책을 덮어도 좋다. 이 소설집의 미덕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한 장면, 혹은 한 페이지만 읽고 책장을 덮어도 그 감동이 장편소설 한 편을 읽은 것 못지않게 크고 넉넉하다. 그래서 또다시 책을 집어들게 만든다.

 

그 가운데 책 제목으로 삼은 '사냥'이라는 단편소설은 매력적인 서러움을 준다. 서러움도 이만한 매력이면 참으로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덕대'를 체포하기 위해 작가가 장치해놓은 온갖 사냥술을 읽다보면 어느새 나는 이야기의 덫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 난감한 상황이 서럽지만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마치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인 것만 같아서, 어제를 살았던 너의 모습인 것만 같아서, 그리고 내일 또 힘겹게 살아가야 할 우리의 모습인 것만 같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대학 강의실에서 작가를 만났고, 처음으로 작가의 친필 서명본까지 얻었으니 일부러라도 다른 책들과는 그 의미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코 그 사실만이 '사냥'을 재독, 삼독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살아가다보면 인생의 전환점을 마주하게 된다. 대개 사람들은 그 시절을 두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흐뭇해하기도 한다. 나 역시 「사냥」을 만남으로 해서 삶의 방향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일까? 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나는 자주 「사냥」을 펼쳐보며 내가 옳게 가고 있는지 자문하곤 한다. 그렇지만 나는 또한 경계한다. 그것이 전범(典範)으로 굳어지기 전에 스스로 헤어나올 수 있기를.

 

1990년에 '사냥'이 나왔으니 지금은 구하기도 쉽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가까운 시기에 재출간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기억해두었다가 일독을 권한다. 그러면 누구라도 재독, 삼독으로 이어질 거라고 나는 믿는다.

 

/문신(문화정보114 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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