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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초상 빚에 과거 빚

땅파는 이유 가지가지

숙종 45년 딸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이씨부인이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 (desk@jjan.kr)

'쩐의 전쟁'이 높은 인기를 끌었던 것은 그 이야기가 TV드라마 속에만 존재하는 가공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라고 어디 사정이 다르겠는가? 당시 작성된 각종 매매문서를 살펴보고 있느라면 '쩐' 때문에 금쪽같은 땅을 팔아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외마디 소리를 도처에서 들을 수 있다. 이들 문서에 오늘날의 부동산 매매문서와는 달리 매매의 사유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문서는 '긴히 쓸 데가 있어서'라든가 '부득이한 형편으로'라는 따위의 상투적인 문구를 쓰고 있지만, 깊은 속사정을 드러내고 있는 문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흔히 눈에 띄는 것은 흉년으로 세금을 납부할 방법이 없어서 땅을 판다는 내용이다. 환곡(還穀)을 갚기 위해 전답을 파는 경우도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 환곡은 흉년이 들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백성들이 정부로부터 빌린 곡식을 가리킨다. 봄에 빌려 가을에 이자를 붙여 갚았지만 여기에 관리들이 농간을 부리고 폭리를 취하면서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였다. 이 때문에 조상 대대로 갈아먹었던 전답을 팔고 길바닥에 나앉게 된 농민들이 상당수에 이르렀다.

 

과거에 응시하느라 지게 된 과채(科債)도 땅을 파는 주된 이유의 하나였다. 그깟 시험 하나 보는 데 무슨 빚이냐고 물을 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의 과거가 어디 보통시험이던가. 특히 문과(文科)의 경우 응시자의 입장에서는 평생을 건 사업이자 도박이었다. 운 좋게 20대의 젊은 나이에 급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60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과장(科場)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드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교통편이 좋지도 않았기 때문에 지방에서 서울로 과거응시를 떠나는 일은 상당한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니 낙방이 거듭되다 보면 집안 말어먹는다는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오늘의 문서에 촛점을 맞추어 또다른 매매 사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림에 보이는 문서는 숙종 45년(1719)에 정홍립의 아내 이씨가 전라도 순창군 팔등면에 있던 논 2마지기를 최태제라는 사람에게 36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원래 이 논은 정홍립이 생전에 매입하여 경작해오다가 막내딸에게 물려주었던 것인데, 그 딸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초상을 치르게 된 이씨가 장례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이 논을 처분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씨처럼 상채(喪債)를 짊어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심지어 부모상을 치렀는데도 상채를 짊어지지 않았으면 불효자라는 말조차 있었다. 조선조 유교사회의 독특한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라고 효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중의 제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애써 마련한 위토답을 몰래 팔아먹은 종손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유호석 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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