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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삶의 본질은 자연으로... - 최효준 도립미술관장

헤르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두행숙 옮김.이레

헤르만 헤세의 6촌 손녀 유군더트 전 중앙대 교수는 “독일인보다 한국인이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질풍노도 시기의 통과의례 거리였던 『데미안』을 비롯해, 『수레바퀴 밑에서』『싯다르타』『나르치스와 골드문트』『유리알 유희』등 명작의 저자로 우리에게 사랑받았던 헤세(Hermann Hesse)의 『정원일의 즐거움』(원제: Freude am Garten, 두행숙 역, 도서출판 이레, 2001)은 저자가 직접 그린 소묘와 수채화까지 곁들여져 읽는 이를 고요하고 충일한 사색과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

 

헤세는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자 집필 이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정원에서 보내며 그곳에서 쉬고, 관찰하고 사색했다. 그의 정원은 끔찍한 전쟁에 휩싸인 당대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생명의 흐름에 심신을 맡겨 그 혼란스럽고 고통에 찬 시대에 영혼의 평화를 지켜주는 보루였다. 헤세의 심오한 삶에 대한 성찰은 그의 정원에서 이루어진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04년 전시로 국내에서도 소개된 그의 ‘정원 그림’들은 화풍이 담백하고 진솔하여 이 책에서도 그의 수필과 시의 문체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헤세는 어린 시절부터 큰 나무뿌리와 돌 틈에 솟아난 색색의 줄기 같은 자연의 기이한 형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이 지닌 고유한 매력에 마법에 걸리듯 사로잡힌 채 복잡하게 얽힌 비전(秘傳)의 언어에 몰두했다. 하여 헤세는 우리와 자연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 바로 이 분리될 수 없는 신성함임을 깊이 깨달았고, 이 깨달음이 그의 삶을 이끌었고, 그를 늘 정원에 머물게 하였다. 그는 산 강 나무 잎사귀 뿌리와 꽃 등의 모든 자연 현상은 우리 안에 그 원형이 내재되어 있고, 우리가 사랑의 힘, 창조의 힘으로 느끼는 그 영원성을 지닌 영혼이 자연과 곧 하나임을 ‘정원에서의 삶’을 통해 체감하고 있었다.

 

헤세가 그의 정원에서 가장 소중하고 성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이름답고 강인한 나무들이었고, 인간보다 오래 살며 고요하고 긴 호흡을 가진 나무를 늘 예찬했다. 정원의 오래된 나무가 폭풍우에 뿌리 채 뽑히거나 나이 들어 쓰러졌을 때 그는 말했다. “너는 그래도 주어진 숙명에 따라 품위 있고 온당한 죽음을 맞이했으니 행복하였다. 너는 우리 인간들보다 멋있고 아름답고 기품 있게 죽어갔다.”

 

그는 당대인들이 의구심을 가진 것처럼 미숙하거나 반동적이거나 시대의 요구에 등을 돌리고 현실에서 도피한 작가가 아니었다. 후에 발간된 10여권에 이르는 정치 및 문화비평 분야의 간행물이 세인들의 그러한 혹평을 잠재웠다. 그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압제의 희생자들에게 정원이 딸린 자신의 집을 개방했으며, 수백의 이주자들과 도움을 구하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단한 행동력으로 그들을 지원했다. 그는 세계 각지에서 조언을 구하기 위해 보내 온 수천 통의 편지들에 답장을 쓰며 계몽했다. 자원 봉사를 하고, 보증을 서주거나 추천서를 써주거나 비자를 주선해주며, 집단적이고 파국적인 권력에 대항해서 능력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모든 일을 쉼없이 했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썼다.

 

양차 세계대전이 거푸 터졌던 인류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그 시대, 소극적인 은둔자가 아니라 그토록 행동적인 지성으로 꿋꿋한 삶을 살았던 그를 그이게 해 준 원천이 바로 대자연을 축약하여 담은 ‘정원’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들도 한 뼘 정원을 필요로 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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