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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공부에 편집증ㆍ고독과 분노 자상한 군주 등 입체적 묘사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박현모 지음·푸른역사

박현모 교수의 책. (desk@jjan.kr)

여러 명의 장님들이 제한된 시간 동안 거대한 코끼리를 만져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어떻게 될까.

 

긴 코를 만진 사람은 길다란 대롱을 그릴 것이며, 단단한 상아를 만진 사람은 길쭉한 뿔을 그릴 것이다. 우람한 다리를 만져본 사람은 커다란 통나무를, 평평한 배를 만진 사람은 널따란 벽면을 그릴 지도 모른다.

 

역사 속 인물을 말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푸른역사)를 펴낸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는 “세종의 정치를 말하고 쓴다는 것은 어쩌면 ‘장님 코끼리 그리기’일 수도 있다”며 “수많은 사건과 다양한 이야기들, 그리고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실록 속의 복합구조’를 하나하나 탐색하면서 그려보는 나의 세종 그림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가 세종을 그리는 이유는 그려본 다음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들판에서 농부의 고통을 묻는 자상한 군주의 모습과 ‘강무(講武)란 군국(軍國)의 중대한 일’이라며 민폐와 군사들의 고초를 감내하면서라도 군사훈련을 감행하는 모습. 박교수는 「세종실록」을 되읽어가면서 어느 쪽이 진짜 세종의 모습인지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부딪쳤다고 한다.

 

“여러 인물들의 시각에서 그려낸 그림 조각들을 맞춰 ‘세종’의 그림을 근접하게나마 그려보고 싶었다”는 박교수. 그래서 이 책에는 ‘조선의 정치가 9인이 본 세종’이란 부제가 붙었다.

 

아버지 태종은 공부에 편집증적으로 매달려있던 세종을 무(武)에는 무(無)지한 걸로 봤으며, 수양대군은 세종의 얼굴에서 고독과 간간히 집현전 학자들에게서 느끼는 분노를 읽었다. 허조는 세자빈의 동성애 스캔들을 난감한 표정으로 대하는 세종의 모습을 묘사했다. 각기 다른 시선에서 바라본 덕에 이 책을 통해 그려진 세종의 모습은 입체적이다.

 

「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세조실록」 「정조실록」은 물론이고, 이이의 <율곡전서> ,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악학궤범> , 신숙주의 <보한재집> 등 다양한 사료를 폭넓게 인용했다. 꼼꼼한 조사와 치밀한 계획에 따라 그 출처를 빠짐없이 표기하고 재구성해낸 지은이의 성실함과 역량이 돋보인다.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정조의 성왕론과 경장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박교수는 세종, 숙종, 영조의 국가경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실록학교’ 등에서 세종과 정조의 국왕 리더십을 강의 중이며,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도 맡고 있다. 「정치가 정조」 「세종의 수성리더십」 등을 펴냈다.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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