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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 지음·류시화 옮김·현문미디어

리처드 바크(Richard Bach)가 1970년 미국에서 발표한 <갈매기의 꿈> (원제: Jonathan Livingston Seagull, 류시화 역, 현문미디어)은 미국 문학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판매를 앞질렀고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의식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70년대 초 국내에서 정현종 시인의 번역본에 ‘갈매기의 꿈’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래 같은 제목으로 현재 출간되어 있는 번역본만 30종이 넘는다.

 

<어린 왕자> 의 저자 생텍쥐베리처럼 전직 비행사였던 리처드 바크는 초기에 열여덟 군데의 출판사들로부터 이 책의 출간을 거절당했다. 미국 서부해안의 젊은 세대들이 손으로 베껴가면서 이 작품을 돌려 읽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몇 해에 걸쳐 일반인들에게로 퍼져 나갔고 결국 “더 멀리 보기 위해 더 높이 날기를 꿈꾸는” 사람들의 성서가 되었다. 역자 류시화는 이 소설이 기존 질서에의 순응보다는 진정한 삶을 향한 껍질 깨기를 권하며 모든 인간이 위대한 가능성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였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일단의 성직자들은 이 소설을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의 죄로 가득 찬 작품이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승 갈매기 치앙이 조나단에게 “천국은 완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하며 완전한 내적 자유의 추구를 권하는 모습은 예수가 “하늘의 아버지처럼 너희도 완전한 자가 되어라”라는 성서의 구절을 떠올리게 해준다. “그대는 높이 날아올라 사랑과 자비의 의미를 알기 시작할 것이다”라고 말하던 치앙은 떠나고 조나단도 떠나지만, 치앙에서 조나단으로 조나단에서 플레처로 깨달음이 전해지는 설정은 선가(禪家)에서의 의발(衣鉢)의 전수를 연상시킨다.

 

오직 먹이를 찾기 위해 비행하던 갈매기들 무리의 질시와 냉소를 뒤로 하고 떠나, 비행 그 자체의 참 의미를 찾아 고독하고 치열한 구도의 길을 택한 조나단이 스승 치앙을 만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동료의 만류를 뿌리치고, 과거에 자신을 추방했고 여전히 서로 투쟁하고 불평하고 있는 옛 무리로 되돌아온다. 이것은 십우도(十牛圖)에서, 저자에 들어가 중생을 돕기 위해 손을 내미는 입전수수(立廛垂手)의 경지와 방불하다. “플레처는 자신의 제자들을 엄격한 눈으로 바라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그들 모두를 진정한 모습 그대로 보게 되었으며 자신이 보는 것 그대로를 사랑했다”라고 소설은 끝맺는다.

 

바크의 소설을 필사해서 돌려보았다는 미국 서부 해안의 젊은 세대들이란 바로 새로운 가치에 목말라하며 동양사상에도 심취하였던 히피의 후예들이었다. 인간이 모름지기 진정한 깨달음을 통해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바크의 메시지는 과연 시대를 초월하고 문화와 종교와 유행을 뛰어넘는다. 70년대 한국, 그 엄혹한 시절에 얄팍한 이 한권의 책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한 존재가 내적 성장을 추구하여 영혼의 고양과 초월을 이루는 과정을 우화 형식으로 절묘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필자에게도 어떤 교본 같은 것이었다.

 

팝가수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가 배경에 깔린, 아카데미상, 골든 글로브상, 그래미 상을 수상한 동명의 영화도 다음과 같은 헌사로 시작된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살고 있는 진정한 조나단에게.”

 

꿈과 이상을 키워가기 너무도 어려워진 이 시대, ‘이태백’을 넘어 ‘이구백’이 된 시대에, 단지 먹고 사는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무한한 자유의 가능성을 추구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시대를 뛰어 넘어 오늘 여기의 젊은이들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 확신이 없다. 그러나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효준(전북도립미술관장, 본지서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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