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와 같이 500년을 단일 왕조로 지속한 국가는 세계사 속에서도 찾기 어렵다. 사색당파를 조선왕조의 멸망 원인으로 파악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사관에 익숙해 왔던 우리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궁리해 볼 시간은 많지 않았다. 영조와 정조시대와 같이 한국 르네상스라는 부흥기를 배우면서도 곧바로 멸망기로 접어 들어버렸다고 하는 식의 역사교육은 가장 중요한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년이란 최장의 왕조가 유지된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속시원한 대답을 찾기 어렵다.
어쨌든 한 왕조가 500년이란 장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체제의 특장점이 분명하게 있기 마련이다. 조선왕조의 특징 중 하나는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상하지휘보고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중앙집권체제인 조선에 있어서 국왕의 명령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백성들까지 전달되었는지, 백성들의 사회적 요구사항이 어떤 단계를 거쳐서 국왕에 이르는지에 대한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감결 역시 그러한 시스템의 운영과정에서 생산된 문서이다. 감결은 상급관청에서 하급관청으로 내려 보낸 명령 또는 지시사항이 명시된 공문서를 말한다. 1854년 전라도 순찰사는 순창으로 한 장의 감결을 내려 보냈다. 그 내용은 비변사에서 보내 온 관문의 내용을 옮겨 적은 것으로 잘 받들어 살피도록 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있다. 감결은 내용은 영중추부사인 정원용이 호남의 민폐를 돌아보고 동년 10월 11일에 왕에게 주청한 것에 대하여 왕이 내린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먼저 조경묘와 경기전을 수리한 관리자의 수고에 대해 시상해 줄 수 있도록 그들의 업적을 작성하여 올리라는 것과, 전주의 세곡을 전주부의 포구에 받아서 두도록 하고, 중앙·군문에 납부하는 무명은 10년에 한하여 돈으로 대신 바치며, 장성부의 대동미는 무명으로 환산하여 받고, 명종조(明宗朝)의 유현(儒賢)인 이항(李恒)에게 정3품직을 가증(加贈)하고 호남 사람들의 소망대로 시호를 하사하며, 부안 위도는 청어가 흉어이므로 세금을 탕감한다는 등과 같이 민생 생활에 대한 대책과 호남지역 유림의 소망을 들어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라가 멸망해 가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철종조의 이같은 감결은 적어도 민생생활에 있어서는 끝없는 관심과 노력이 사라지고 있지 않다는 점과 지방의 백성들까지 국왕의 명령이 잘 전달될 수 있었던 사회적 시스템이 있었기에 한 순간에 멸망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민생고의 해결은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철새가 아닌 시도 때도 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정치인들만 모르는 것은 아닐까?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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