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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평화.상생의 '생명수' 찾아서 - 이규태 교수

황석영 '바리데기'

황석영의 「바리데기」(창비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속설화인 ‘바리데기’를 현실세계의 문제들과 접합시켜 생명평화와 상생의 미래를 추구한 화제의 작품이다.

 

설화의 내용은 대개 다음과 같다. 어느 나라에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난 ‘바리공주’를 아버지가 참다못해 산속에 갖다버리라고 한다. 버려진 ‘바리공주’를 짐승들이 보호하고 키운다. 그런데 ‘바리공주’를 버리고 난 이후 온 세상에 병이 돌고 부모도 병이 들어 죽을 상황에 직면한다. 점을 치니까 옛날에 갖다버린 ‘바리공주’가 해가 지는 서쪽 세상 끝에 있는 ‘생명수’를 찾아오면 산다고 한다. 그래서 ‘바리공주’를 찾고, ‘바리공주’는 ‘생명수’를 찾아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생명수’를 구해 돌아와 부모와 세상을 살린다는 줄거리이다. 설화 속의 ‘바리공주’가 바로 ‘바리데기’이다.

 

소설 「바리데기」는 탈북소녀 ‘바리’를 통해 설화와 현실을 재구성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나아가 대양을 넘어 서구사회의 심장부 런던에까지 들어가 21세기 전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바리’는 북한의 어느 단란한 집 일곱째 딸로 태어나 ‘바리공주’처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은 그래도 가족이 있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가뭄과 기근으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설상가상으로 외삼촌이 남한으로 탈출함으로써 가족은 완전히 해체된다. 시기적으로는 소련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북한의 정치경제 환경이 급속히 나빠지고 기근과 홍수로 죽는 이들이 늘어난 1990년대 중반이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피난생활을 해야 했던 ‘바리’는 이때부터 험난한 생을 시작한다. 모든 것을 잃은 ‘바리’는 지독한 고난 속에서 이승과 저승,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설화 속의 공주처럼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생명수’를 찾아 중국을 거쳐 영국에까지 흘러가게 된다.

 

중국대륙과 대양을 건너 런던에 정착하는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북한 동포들이 겪어야만 했던 말 못할 재앙의 고통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외와 차별, 갈등과 분쟁, 절망과 폭력, 전쟁과 테러를 경험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10년 내에 벌어진 9?1 테러,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침공, 영국 동시다발 테러, 다양한 이주민의 삶을 소재로 한 종교와 인종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모습들을 모두 한 배에 탄 우울한 인류의 자화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설화는 효심을 바탕으로 했지만 저자 황석영은 「바리데기」를 통해 이데올로기와 종교, 그리고 인종 갈등을 넘어서는 ‘평화와 상생’이라는 ‘생명수’를 추구하고 있다. 설화가 그렇듯 「바리데기」도 절망을 넘어선다. 물론 똑같은 것은 아니다. 설화가 전형적인 해피엔딩을 보여주고 있다면 「바리데기」는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까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분노와 폭력으로 물든 지구촌을 향해 반성을 촉구하는 동시에 끝끝내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강변한다. 이 희망이야말로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라는 점을 절실하게 일깨우는 것이다.

 

‘바리’는 남들보다 더 힘들고 몇 배로 험난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로 인해 조그만 것에 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은 경험을 통해서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의지를 갖게 되었으며, 수많은 갈등을 겪음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과 화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결국 세계는 서로 얽혀 있으며 세상의 모든 일은 우리 자신의 삶과 관련이 있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남과 북이라는 분단 현실과 갈등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문화적 공통체로서 하나일 수밖에 없는 당위와 필연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은 생명과 평화, 조화와 상생의 길을 21세기의 문명으로 재창조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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