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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홍패 위조 - '가짜' 과거 합격증 소란

경상도 남해현에 사는 김재박이 암행어사에게 올린 청원서. (desk@jjan.kr)

로스쿨을 둘러싼 소동이 가라앉질 않고 있다. 소위 ‘고시’ 합격이 가문의 영광이요, 온 동네의 경사로 여겼던 시절이 지금도 없어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고시’가 가지는 위력은 합격은 바로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있다. 옛 사람들이 과거 합격에 목숨을 걸듯이 맹진한 것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특히 3년에 한번씩 시행된 과거시험이었기에 낙방은 3년고생으로 연결되고, 생활을 영위하는 문제 역시 가난한 선비들에게는 쉽지 않은 고민이었다. 하지만 합격하였을 경우에는 모든게 달라진다. 세상사람들이 어떤 자리에 오르면 50가지가 바뀌네 100가지가 바뀌네 하는 것처럼 과거에 합격하면 눈뜬 장님처럼 대명천지가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으로 웃지 못할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때 ‘고시합격생’ 행세를 하면서 수많은 여성을 농락하고 돈을 편취해 내는 고시병 범죄가 유행하고 아직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 역시 고시가 가져다주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 때문인 것이다. 이런 범죄행위는 목적이 무엇이었던지 ‘위조’라는 또 다른 범법행위를 동반하게 된다. 그럴듯한 언변을 완벽하게 뒷받침해주는 것이 고시 합격증이었을테니까 말이다. 조선시대 과거합격을 둘러싼 폐단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갑신년 어느날 경상도 남해현 고현면에 살던 김재박은 동생의 위조된 과거합격증을 놓고 몹시 난처한 상황에 처하여 그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소지를 수령과 암행어사에 올려 호소하였다. 사건의 발단은 동생 김항이 과거에 급제하였다고 하면서 홍패(과거합격증)를 위조하고 창부 십여명을 데리고 오면서 시작되었다. 김항의 일행을 맞이한 형 김재박은 과거에 합격한 동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큰 잔치를 벌이게 되었고, 그 잔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재산을 팔아야만 했다. 그런데 동생의 과거합격증이 위조된 것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즉각 위조된 홍패는 불태워졌고 동생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동생의 합격에 온 재산을 탕진한 김재박은 결국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창부로 왔던 문관성이라는 작자가 동생에게 돈 160냥을 빌려주었으니 감옥에 갇힌 동생을 대신하여 형이 갚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소장을 올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서 김재박은 급제 축하 잔치비용을 다 갚았기 때문에 무고한 누명을 쓸 수 없다고 하면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암행어사에 청원하였던 것이다.

 

과거합격증을 위조해서 한판 해 먹었던 김재박의 동생과 같은 허황된 꿈을 쫒는 사람들이 많았던지 홍패 위조에 대해 조선정부는 엄한 처벌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문서를 위조하는 것은 자신의 범죄를 위한 최초의 범법행위이다. 과거합격증 처럼 그 문서 하나가 가지는 폭발력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그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문서 위조는 사라지지 않을 범죄행위이다.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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