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 산방일기'...박남준 지음...조화로운 삶
최근에 한 착한 일이 뭐냐고 묻자, 꽃밭에 죽은 나비를 묻어줬다고 대답하는 박남준 시인. 어느 가을날, 그의 외딴집으로 전화 걸면 “가을이 깊어갑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깊어가고 있습니까?”라는 녹음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낮지만 맑은 목소리. 그의 말간 얼굴까지 보고나면 사람들은 곧 시인에게 빠져들고 만다. 소설가 한창훈씨가 소개하는 시인은 더욱 매력적이다. ‘삶은 정갈하고 성품은 깨끗하고 몸은 아담하고 버릇은 단순하고 행동거지는 품위 있고 눈매는 깊고 손속은 성실한 데다가 시서에 능하고 음주는 탁월하고 가무는 빛나는 가인(佳人)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팬이 많지요. 따르는 무리가 적지 않고 행여나, 멀리서 바라보는 이는 넘쳐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가 산 속에 사는 이유는 알게되면 깬다. 뭔가 그럴싸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지만, 단순히 돈이 없어서다.
“내 경제 생활로는 도시에서 도저히 살 수 없었다. 돈을 쓰지 않는 삶이라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되겠다. 산 속에서 외따로 살아야 겠다.”
“전원생활을 원치 않던” 그였지만, 돈을 쓰지 않기 위한 삶을 택하다 보니 산 속에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지금 그는, 지리산 자락 악양에서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관값’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장례비 200만원만 가지고 있고 조금이라도 넘치면 여기저기 시민단체에 기부한다.
‘시인 박남준이 악양 동매마을에서 띄우는 꽃 편지’란 부제가 붙은 「박남준 산방 일기」(조화로운삶). 모악산 기슭의 흙집에서 열두해를 보내며 쓴 「꽃이 진다 꽃이 핀다」에 이은 것이다.
쌀을 씻다가 반딧불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족제비와 참치 깡통을 나눠먹는 삶. 텃밭을 일구다가도 술 한잔 기울일 줄 아는 삶은 바람 좋고 해 좋은 날의 따뜻함이 전해진다.
“매이지 않는 정신을, 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욕심인가.”
쌀 항아리에 쌀 떨어지지 않고 나무 청에 땔나무들 겨울나기에 충분하고, 김장 항아리에 김치와 동치미가 가득하다. 내가 쓰고도 흡족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들려줄 시 몇 편 쓰는 일이 기쁘다는 시인.
“혼자 시를 쓰고 즐거웠다. 그러나 그 시가 혼자만 잘 살기 위한 것이라면 나는 그런 시 쓰지 않을 것이다. 혼자만 즐거운 시라면 기꺼이 쓰레기더미에 던져 버릴 것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시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함께 나눔이 되지 못하는 시라면 그건 필시 독이다. 절망하는 이들의 가슴에 다가갈 수 있다면, 함께 그 절망을 나누는 위안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기쁨을 버리고 그 절망으로 내딛을 것이다. 누군가 그 발자국을 따라 등불의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독재의 칼날이 횡횡하던 시대 시를 쓰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시를 쓰는 이유다.
여기 묶어 내보이는 글들은 시인이 시인에게 쓰는 편지요, 일기와 같은 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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