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격랑에 묻힌 개인의 작은 이야기들
지난 가을, 한 문학행사에서 만난 소설가 김연수(37)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컬러풀한 운동화가 경쾌해 보였으며, 실실 웃음을 흘리며 조곤조곤 풀어놓는 말은 부드러웠다.
돌아오는 길, 그의 소설이 읽고 싶어 「꾿빠이 이상」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서둘러 샀던 기억이 있다. 책 날개를 찬찬히 읽어보다 언젠가 ‘이런 류는 나와 맞지 않다’며 멀찍이 밀쳐두었던 「스무살」의 저자가 바로 그라는 걸 깨달았다. 그 때의 묘한 기분이란.
작가와 그 작가의 글이 주는 이미지가 서로 일치하든 일치하지 않든, 글이 아닌 작가에 반한 이 기분이 참으로 속물스럽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작가를 통해서라도 그의 글에 관심을 갖게 됐다니, 열심히 썼을 작가를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최근 김연수가 펴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은 2005년 겨울부터 2007년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됐던 장편소설이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선정하는 ‘이달의 책’에 이어 2007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우수문학도서’에도 들었다.
소설은 1990년대를 살았지만 그 주변부에 내팽겨져 있던 수많은 인물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등장시킨다. 텍스트 전체의 화자인 ‘나’ 역시 이야기의 한 주인공이며 작중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인 동시에, 무수한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수집가이자 편집자, 그리고 논평자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한없이 이어지는” 일종의 “라운지 소설”을 의도했다는 작가. 서로 관계없는 듯한 기이한 이야기들이 역사와 시대 안에서 끝도 없이 끼어들고 중첩되며 갈라지고 증식한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는 대단히 지성적이다.
김연수는 “정통적·전통적 글쓰기를 수행하면서도 새로운 상상력의 촉수로 문학의 영토를 넓혀가는 작가”로 문단 안팎에서 두루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문학을 안심시키면서도 향후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는 ‘90년대 작가이면서 21세기의 작가이고, 한국의 작가이면서 국경을 넘어설 수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프로 소설가’로 불린다. ‘2007 황순원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나에게 소설은 신성한 것이다. 나는 소설가다.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을 쓴다면 그건 소설가가 아니다. 소설가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을 쓰기 위해 나는 무진 애를 쓴다. 나에게 소설은 일종의 공산품이다.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작품이란 뜻이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고 집요하게 소설을 쓰는 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로 소설가’의 소설 쓰기가 어떤 것인지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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