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줄 휴식 한줄
특별나게 시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유달리 입 안을 맴도는 시 한편 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시인, 소설가, 교수, 단체장 등 저명 인사들이 신간 '나의 애송시'(범우 펴냄)에서 즐겨 읊는 시와 시조를 공개했다. 김초혜 시인은 지난해 타계힌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방에 붙어 있던 시구를 잊지 못한다.
"오동은 천 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라고 적힌 이 시는 조선 중기 문인 신흠이 쓴'야언(野言)'.
김 시인은 "긴 세월에 걸쳐 많은 시와 시인을 접해왔지만 시와 시인이 일치하는감동을 갖기가 쉽지 않다"면서 "그 시구는 바로 선생님의 삶과 인품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읽는 순간 숙연해졌다"고 밝혔다.
도종환 시인의 애송시는 원로시인 신경림의 시 '동해바다'.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도 시인은 "우리는 왜인지 나에게는 너그럽고 남에게는 엄격하다"면서 "남에게 엄격한 사람이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과정이 바로 수행의 길이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남윤수 강원대 명예교수는 젊은 시절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 준 시로 김기림의 '일요일 행진곡'을 꼽았다. "월/화/수/목/금/토/하낫 둘/하낫 둘/일요일로 나가는 '엇둘' 소리……/ 자연의학대에서/ 너를 놓아라/ 역사의 여백……/ 영혼의 위생 데이……/ 일요일의 들로/ 바다로……" 남 교수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날이 그날 같았던 암울하던 시절, 왜 사는지에 대한 회의가 무성하던 문학청년 시절에 이 시는 단박에 머릿 속에 입력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루하루가 경쾌하게 일요일을 향해 내달리는 김기림의 시처럼 "일요일 하루는 쉬기로 하고, 들로 산으로 바다로 나를 내놓았다. 유쾌한 하루와 공활한 하늘은 새로운 세계였다"면서 "침울하던 터널을 한 편의 시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시의효용성이란 참으로 놀랍다"고 밝혔다.
오남구 시인은 병든 아내를 입원시킬 돈이 없었던 젊은 시절 쓴 자작시 '풀꽃'이 당시 제자들을 한꺼번에 울리는 것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시인임을 실감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아내는 내일 입원을 한다./ 시는 돈이 될 수 없다./ 입원비를 마련치 못하는데/ 아내에게 시를 갖다 주면/ 꽃이 될까/ 아니 될까/ 딸들이 엄마 곁에서/ 풀꽃으로 흐느끼는 온밤." 월간 '책과 인생'에 실렸던 글들을 엮었다. 198쪽. 1만2000원.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