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성의 삶 통해 바라본 아프가니스탄의 현실
추석에 고향에 다녀오고 나서 남은 연휴 기간에 이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은 결코 재미있지 않았다. 재미라기보다는 오히려 맘 아프고 화가 나고 너무나 눈물나게 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밤늦게까지 책은 내 손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무언가 세상의 진실을 향하게 하는 그 어떤 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할레드 호세이니라는 작가는 참 대단한 작가이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의사로 미국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는 게 이렇게 뛰어난 작품이라니, 그의 작가적 재능이 놀랍다. 그러나 그의 소설을 가능하게 한 그의 삶의 이력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에게는 글쓰기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아마도 떠올리기조차 힘든 지난한 과거를 섬세하게 들추면서 글로 재현해내는 과정은, 의사가 환자의 환부를 드러내어 치료하는 치유의 과정과 흡사하리라 생각한다. 작가는 글을 씀으로 해서 자기 자신을 치유한 것이다.
나에게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세상에 이런 삶도 있다니, 라는 절망의 한숨과 한탄이 나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러면서 세상에 이렇게도 용기 있게 삶을 헤쳐나오다니, 경탄과 안도의 한숨도 나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마리암과 라일라, 이 소설의 축을 이루는 주인공 여자들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르면서도 닮았다. 마리암은 하라미(사생아) 출신이고 라일라는 남편을 속이고 하라미를 낳는다. 이 둘의 남편은 라시드. 라시드는 악의 화신이다. 마리암과 라일라가 남편에게 학대당하고, 남편은 아내들을 학대한다. 이들은 이렇게 살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그건 아마도 시대가 사회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관습과 그런 분위기, 그런 가르침을 내면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라시드조차 시대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의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마리암이다. 라일라와 두 아이를 위해서 담담하고도 의연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숭고한 순교자, 위대한 성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리암의 희생이 있었기에 남은 사람들의 행복이 약속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억압에 대한 결연한 저항이 있을 때 인간에 대한 희망도 존재한다고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라일라의 아버지가 집을 떠나 피난을 가려고 할 때 들려주었던 시 귀절에 집약되어 있다. 17세기 사이브에타브리지라는 시인이 카불에 대해 썼다는 시의 일부이다. 이 책의 제목도 여기에서 따 온 것이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책의 내용을 다 발설하여 스포일러가 되기는 싫다. 독자들께서 이 책을 읽고 직접 느껴보시기를 바란다. 그의 다른 책 『연을 쫓는 아이』도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들의 책과는 배경이 좀 다르지만 비슷한 분위기의 수잔느 피셔 스테이플스가 쓴『바람의 딸 샤바누』도 함께 읽으면 이슬람에 대한 이해와 여성들이 어떻게 억압받고 어떻게 이에 맞서 살아왔는지 조금은 알게 되리라 믿는다.
/김동규(남원한빛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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