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작성된 것만큼 어려웠던 초기 한글 문서
매년 한글날이면 우리 말과 우리 글의 아름다움에 대해 논한다. 올해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사용한다는 것은 국가와 민족으로서의 한국과 한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쯤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매년 외래어의 남용을 걱정하고 무너져 가는 인터넷의 말과 글들을 걱정하는 것도 그것이 단순히 한글의 올바른 사용 여부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사용의 생활화는 중첩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한자'를 '한글'로 바꾸어 쓰는 것만이 아니라 한자를 우리 말로 바꾸어 쓰는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는 논문, 특히 역사와 철학계통의 논문에 한자 사용이 대폭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으레 논문의 제목 쯤은 한자로 써야 무게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이전에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한글을 사용하거나 한자를 함께 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때문에 외국 사람들 특히 한자문화권에 있는 중국과 일본 사람들이 요즘 발표되는 한국 연구자들의 논문을 읽는 것이 어렵다고 토로하곤 한다. 우리 말이 아닌 우리 글로 한자의 음을 적기 때문에 거시기가 거시기인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글의 사용이 보편화되는 시점에 나타는 일차적인 관행은 기존의 한자어를 한글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문서는 토지매매문서이다. '명문(明文)'으로 분류되는 토지매매문서 중 한글로 작성된 문서는 한자로 작성된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어렵다. 한자명문을 인지하고 있으면 쉬울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해독의 수준에 있는 문서이다.
내용인 즉 이렇다. "위 명문은 대대로 내려온 답 5두락을 여러 해 지어 먹었으나, 형편이 부득이하여 마산편 정쟁뜰에 있는 19배미의 논을 돈 50냥에 옛 문서와 함께 위 사람에게 영원히 파니, 이후에 만일 문제가 있으면 이 문서로 관청에 고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도록 할 것이다" 위의 문서를 보고 이렇게 해석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이렇듯 한글사용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한자를 한글로 표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바른 한글의 사용은 우리 말과 우리 글이 함께 쓰여지는 것을 말한다. 한자나 외래어, 외국어를 대체할 우리 말과 글이 만들어지고 널리 사용하는 것만이 올바른 한글사용의 보편화일 것이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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