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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고미숙 '이 영화를 보라'

'영화' 보는 안목 높여주는 책…재미있게 감상하고 이해하는 방법 담겨

처음 내가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솔직히 나는 '뭐야, 이거!' 하는 언짢은 마음을 품었었다.

 

나이가 먹어도 도무지 철들지 않는 반항심의 소산이다. 도대체 누가 독자들에게 영화를 보라, 마라 할까? 그러나 저자를 보고는 수긍이 갔다. 그럴 자격이 있었다.

 

 

고미숙! 연암 박지원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서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젊은 학자이다. 젊은 데도 깊이가 있다. 이런 스타일의 인간을 나는 좀 꺼려한다. 이유는 내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의 글은 신뢰가 간다.

 

이 책에 소개된 영화는 모두 여섯 편이다. 아마 다들 아실 영화라고 생각한다. 괴물, 황산벌, 음란서생, 서편제, 밀양, 라디오스타, 이렇게 여섯 편이다.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나도 이 중 다섯 편을 보았다.

 

'보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지난 여름께 다섯 편을 보았다가, 이후 나머지 한 편인 '밀양'을 보았다. '밀양'은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 내심 피하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이 책에 나오는 밀양편을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을 듯하여 할 수 없이 보았다. 역시 보기를 잘한 듯하다.

 

덕분에 책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좋은 영화, 감독, 배우를 만난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뿌듯한 영화라고나 해야 정확한 감상평이 되리라.

 

이 여섯 편 중에서 어떤 영화에 대한 글을 먼저 보고 싶으신지? 물론 각자 다를 것이다. 이 말은 굳이 책을 처음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없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부터 골라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내 경우는 '황산벌'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어디가 궁금했냐면, 계백이 5000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로 출발하기 전에, 아내와 아이들 셋을 베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난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김선아가 배역을 맡았던 계백의 아내는, 계백을 향하고 일갈한다. "호랭이는 가죽 땜시 죽고, 사람은 이름 땜시 죽는 거시여, 이 병신아!" 이 장면을 보았을 때 내 의식 속에서는 뭔가 확 뒤집어지고 있었다. 그렇다. 분명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아주 유쾌하게! 짐작컨대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의 의식에는 '거시기'와 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부담스러운 '역사', '민족', '언어'를 가지고 노는 느낌, 이 책의 필자도 우리와 생각이 같았나 보다. 그 편이 '황산벌_거시기! 표상을 전복하다'라는 제목인 걸 보니. 그 '전복된 느낌'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싶지 않으신가?

 

며칠 전,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다소 낯선 이름의 연구실에서 이 책의 필자인 고미숙 선생을 처음 만났다. 오래 사귀고 싶은 사람에게는 정직한 것이 제일이다. 나는 말했다. " 「유쾌한 시공간」 을 보았을 때는 글이 좀 야단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꽤 여러 권 팔아 주었을 겁니다." 사실이다. 내가 꽤 팔아주었다.

 

"먼지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면서도 독극물 포르말린을 한강에 방류하는 미 군의관의 말을 빌어 근대 위생권력을 폭로했던 영화 '괴물' 낯선 곳에 살러 간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거두던 영화 '라디오스타' '한'을 실체화한 나머지 스스로 한스러워진 영화 '서편제' 등 왠지 다시 보고 싶다.

 

그나저나 모두 지난 영화들이라서 못 보신 분들은 DVD로나 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위의 영화 여섯 편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훨씬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볼 영화도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될 것이다.

 

/오항녕(한국고전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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