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난희 저 '낮은 산이 낫다' ·'하얀 능선에 서면'
햇볕좋았던 지난달 말 실상사에서 열린 제3회 지리산 문화제에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팬사인회 작가로 초대된 남난희씨의 새책 『낮은 산이 낫다』를 만났다.
책은 무척 편안하고 흡인력 있게 잘 읽혔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 저녁 시간을 온전히 남난희 씨의 삶에 빠져서 지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산악인, 태백산맥을 겨울에 76일 동안 단독종주 성공, 여성으로 세계최초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등정, 설악산 토왕성 빙벽 폭포에 두 차례 오르는 등 화려한 산악인의 경력이 책에 소개되어 있었다.
작가의 삶이 진솔하게 서술된 책은 공감을 많이 불러일으켰다. 녹차 만드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삶의 터전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살게 된 사연들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것이 한 편의 장편 드라마를 보는 듯도 했다. 도회지 생활을 접고 지리산 청학동에서 살다가 강원도 정선으로 삶터를 옮겨 '정선자연학교' 교장을 지냈다가 지금은 지리산자락 화개에서 살고 있다는 그. 지금까지 결코 순탄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어디서 살아도 자신의 삶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이 책에는 두 번째 장에 '세 남자 이야기' 가 나오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세 남자란 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이다. 남편을 만나게 된 과정이 무척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결혼 생활이 길게 가지는 못했어도 귀한 아들 기범이를 얻고 기범이와 지내는 이야기는 다른 어느 이야기보다 재미있고, 그 아들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서인지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연인의 전형을 보는 듯 했다.
특히 마음에 그려보는 광경은 남난희 씨가 지리산 청학동에서 살 때 '백두대간'이라는 찻집을 운영할 때의 모습이다. 그 찻집에는 가로, 세로가 각각 4미터, 7미터나 되는 대동여지도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나 큰 규모의 지도가 어떻게 걸려 있을 수 있었겠는가. 이건 바로 천장에 붙이는 방법으로 가능했다고 하는데 이 방법을 생각해 낸 남난희 씨가 참 대단하다. 이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데 무척이나 아쉽다.
산악인이었던 남난희 씨가 산을 내려온 산악인의 이야기를 누에가 실을 토하듯 편안하고도 아름답게 들려 준 이야기를 읽고 나는 남난희 씨의 이야기에 취하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다른 책 『하얀 능선에 서면』을 손에 들었다. 6년 전에 구입한 책인데 대충 넘겨 보고는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책을 오랜만에 들고는 일요일을 종일 태백산맥을 오르내리면서 보냈다.
저자가 76일간이나 사투를 벌이면서 태백산맥 단독종주에 성공한 이야기를 단 하룻만에 읽어버리니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편안한 책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 쓴 것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거칠고 투박한 말투 하며, 곳곳에 젊은이다운 패기와 감상과 때로는 원망과 눈물이 담겨 있어 어제 읽은 책과는 상당히 비교가 되었다.
다 읽고 나서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 예견되었으면서도 왜 스스로 이런 상황에 자신을 내 맡겼을까? 그건 오로지 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젊다는 것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도 무모하리만치 도전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남난희는 태백산맥을 단독 종주하고서 나중에는 백두대간도 단독으로 종주한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겨울에 한뎃잠을 자 본 적이 없는데, 참으로 대단한 여자다. 이제 이 책을 읽었고, 지리산 자락 남원에 살고 있으므로, 올 겨울엔 적어도 며칠은 겨울산을 맛보고 싶다. 하루 12시간 동안 악전고투해서 단 3km밖에 전진하지 못하는 그 고통과 그 경지를 며칠 산에서 지낸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그 경지를 이해하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산에는 어둠이 어떻게 깔리고, 밤은 어떻게 성숙해 가고 겨울밤 하늘의 산정에서는 겨울의 별들이 어떻게 빛이 나고, 새벽은 또 어떻게 찾아오고, 눈쌓인 산정에 또한 아침해는 어떤 모습으로 솟아오르는지 속속들이 느껴 보고 싶다.
/김동규(본지 서평위원·남원한빛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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