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품위 높이는 '포용'…현재를 동의하고 함께 살려는 욕구 가져야
국제결혼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증가로 우리 사회에서도 우리와 피부색이나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학교에도 외국 유학생들이 많이 다니고 있고. 물론 이들 중에서 곧 한국을 떠날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또 그대로 남아 한국 사람이 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문화가정이 대표적이다. 전라북도 교육청에서는 이런 다문화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대면해야할 현실이 된 것이다. 이럴 때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우리 사회의 관념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그대로 그런 관념이 유지되어야 하는가? 그 관념은 타당한가? 그 관념이 바람직한가? 등의 질문이 그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색에 도움이 되는 글을 소개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아주 짧은 글 두 편이다. 하나는 프랑스의 19세기를 살았던 역사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1823-1892)이 1882년 소르본 대학에서 했던 강연을 옮긴 것이다. 그런데 르낭은 민족에 대한 위의 키워드를 하나하나 비판하고 있다.
우선 민족은 역사에서 매우 새로운 무엇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오류라고까지 생각되는 '망각'이 민족 창출의 근본적인 요소이고, 오히려 역사연구의 발전이 민족성에 대한 불리한 증거를 제기한다고 한다. 프랑스는 켈트족, 이베리아족, 게르만족이기도 하기 때문에 '종족'이라는 기준도 실격. 강요하지 않아도 화합하게 만드는 공통의 언어라는 것도, 세 언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의 사례처럼 민족국가의 필수 요소는 아니며, 언어 자체가 역사적인 산물로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혈통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는 것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연적인 국경선'이라고 부르는 지리도 '투쟁과 노동'의 장일뿐 민족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민족은 정신적인 원리로, 풍요로운 추억을 가진 유산을 공유하는 한편, 현재를 동의하고 함께 살려는 욕구, 각자가 받은 유산을 계속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라고 정의한다. 나는 이 정의가 참 풍요롭다는 생각을 한다.
쟈크 데리다(1930-2004)의 글은 이방인에 대한 철학적 탐색이다. '타자', '디아스포라'와 같은 논의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보면 된다. 이 글도 1996년 2회분 강연 내용이다. 익숙하지 않는 존재, 그래서 배제하고 싶은 존재에 대한 대응이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이 대응에는 '환대'도 있지만, '적대'도 있다. 우리가 경험하듯이. 그러나 이 책은 환대의 필요성을 도덕적으로 설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그리고 더 자주 경험하게 될 느낌의 실체를 남김없이 성찰하게 해준다.
지난 11월 12일 뉴스에서 경기도 마석 작은 공장들에 취직해있던 불법체류 노동자들을 체포했다고 한다. 법 집행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사람을 위해 법이 있다는 점,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이런 방식의 접근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예감이 든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의 품위를 위해서라도 배제가 아닌 포용이 기준이었으면 한다. 한국 경제도 어려워지고 있다지만, 가난할 때 부자처럼 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항녕(한국고전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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