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없는 '세상의 길'과 '글 숲'을 헤매다
1990년 소설가가 됐지만 해찰한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된 것일까.
소설가 김병용씨(43·전북대 한국어교육센터 선임연구원)가 두 권의 책을 한꺼번에 펴냈다. 하나는 전북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기행집 「길 위의 풍경」(엘도라도)이며, 하나는 네 편의 중·단편을 엮은 소설집 「개는 어떻게 웃는가」(작가)다. 곧 소설가 최명희와 「혼불」에 대한 연구서도 낼 계획이다.
게을렀다고 말하고 싶지만, 전북작가회의나 아시아아프리카문학페스티벌 등에 관여하며 보낸 시간들이 오히려 글을 쓰는 데 있어 성찰의 깊이를 제공해 주었다고 했다. 다른 길을 좇은 것에 대한 후회는 별로 없다. 그것이 당시 그 앞에 놓여진 삶이었다.
"돌이켜 보면 2008년 초 상실감과 무력감, 열패감에 빠져있었습니다.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로 사람들에 대한 마음의 빚도 컸죠. 이렇게 가라앉아 있을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였는데, 마침 전북일보로부터 '길 위의 풍경'을 제안받았습니다."
「길 위의 풍경」은 언젠가는 나올 책이었다. 틈만 나면 군지, 읍지, 여행기를 읽는 취미로 살다가 문득 직접 돌아다녀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2005년에는 전북의 동남부 산악지대 1500리를 걸었다. 2006년에는 두 딸을 데리고 안데스 산지를 헤매고 다녔으며, 2008년에는 한반도의 서남부를 기행하고 7월부터 7개월간 전북일보에 연재했다.
유홍준과 한비야 정도를 제외하고는 외국작가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기행문학시장에서 욕심을 내본다면 기행텍스트를 생산해 내고 싶었다. 세계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쉬'가 그러하듯 기행문학이야말로 문학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고 생각했다. 실용서인 여행안내서하고는 다른 차원이었다.
"똑같은 풍경이라도 글을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나는 왜 이 풍경에 매료됐는가를 생각하고 글로 재배열하는 과정에서 미처 몰랐던 자기의 미의식과 세계관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산과 산 사이, 강과 강 사이. 맨 처음 난 길은 인간의 길이 아닌, 자연이 만든 길이었다. 금강과 섬진강 줄기를 따라 옥정호 붕어섬을 시작으로 논산, 강경, 공주, 부여, 장흥, 벌교, 강진, 남해,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까지, 한 겨울 일출을 찍기 위해 덕유산만 여섯번을 올랐으며 장자도에서는 길을 잃고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다. 글의 3분의 1쯤은 풍경과 상관 없는 작가의 말이지만, 그래서 더 그 곳에 가고 싶어 진다.
"풍경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순간마다 나의 왜소함과 빈곤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죠. 길 위에서 나라는 존재는 하염없이 작았습니다. 길 위에서 넘어지고 일어나며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입구만 보여줄 뿐 출구는 보여주지 않는 세상의 길과 글의 숲을 헤매고 다닌 시간. 누구는 타고난 역마살을 이기지 못해 여행을 한다고 했지만, 그는 "나는 왜 길을 꿈꾸고 또 막상 길 위에선 집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았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길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 지구의 역사를 따라 걷는 것과 마찬가지. 여정이 계속되는 동안 그의 몸은 그의 마음을 위로했다.
낯선 풍경은 그를 바꿔놓았고, 그 사이 소설은 손에 닿지 않는 열망 같은 것이 되었다.
「개는 어떻게 웃는가」 속 주인공들은 소통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소설을 '소통에 관한 서사'로 한정시킬 수는 없다. 단절의 극복에 대한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는 장애라고 인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기존 소설에 불만이 있었다면 소설가의 생각에 따라 인물들의 성격이 부여된다는 것. 그 역시 그렇게 소설을 배워왔지만, 소설을 쓸 때 만큼은 누가 나쁘고 누가 좋다는 결과보다는 그렇게 된 과정과 배경에 주목해 왔다. 그의 소설, 그리고 「개는 어떻게 웃는가」가 어렵다면 아마 인물의 성격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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